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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Sep 03. 2024

엄마의 눈 밑엔 애벌레가 산다

정신과 약은 호르몬 조절이라는 기능 아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한 없이 쳐지는 기분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주는 대신 살도 오르기 쉽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여름에 맹꽁이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다.

맹꽁이는 볼을 빵빵하게 불려서 울고 난 뒤에도 목이 진동으로 약간 떨린다. 마치 침을 꿀꺽 삼킨 뒤에 목근육이 다시 올려 붙는 그 동작처럼 우리 엄마는 맹꽁이도 아닌데 맹꽁이 같은 떨림이 있다.


이 떨림은 엄마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뒤 생긴 증상이다.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엄마의 목은 항상 불안한 듯 무언가를 먹기 전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고스톱을 칠 때도 약간의 떨림이 있다. 이 작은 떨림은 입과 손에도 나타나서 부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나이가 있으신지라 그 정도 떨림은 당연한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엔 그게 너무 싫었다. 지금도 좋진 않다. 하지만 엄마의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약을 오래 먹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려니 한다. 아마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아프기 전 날렵하던 엄마의 모습을 찾으려 애쓰는 내 눈에만 더 잘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라서가 아니라 모든 동네사람들이 얘기할 정도로 '한 미모' 한다.

동네 미용실 언니는 우리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나는 너희 엄마 처음 봤을 때 진짜 깜짝 놀랐잖아. 저렇게 예쁜 사람이 있나 싶어서."라고 얘기한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학부모 모임에서 우리 엄마를 보고

"야, 딸들인 너네는 엄마를 더 닮지 그랬냐?"라고 타박할 정도다.  


그래, 비록 살이 쪘다고 해도 예쁜 얼굴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양쪽 눈 밑엔 그늘이 늘어진 것 같은 눈밑살이 있다.


엄마의 얼굴을 좋아했던 나로선 그 통통한 애벌레 두 마리가 얹어진 것 같은 눈밑살이 맘에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생긴 나잇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애벌레는 엄마의 우울을 먹고사는 '충'이다.


작년 이맘때쯤, 약을 점점 줄여가며 차도를 보자던 대학병원의 담당의는 2년 내로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약을 끊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하루하루 즐겁게 성당과 집을 오가며 살던 엄마의 눈 밑 애벌레는 그렇게 자취를 감췄었다.


그러나 전환장애를 비롯한 여러 폭풍이 우리 집을 휩쓸고 간 지금, 엄마는 눈 밑에 다시 두 마리의 애벌레를 키우기 시작했다. 태풍이 오기 전 날아드는 태풍벌레처럼 우리 집에 찾아온 이 장마전선은 기어코 그놈의 애벌레들을 엄마의 눈 밑으로 끄집어냈다.


이 축 늘어진 눈밑살은 사람을 우울하게 보이게 하는데 안성맞춤이다. 마치 암막 커튼이 쳐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돈을 벌면 저 눈밑살 제거수술을 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수술을 해서 없앤다고 해도 엄마 마음에 그늘이 진다면 이 애벌레들은 또 나타날 것이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마가 스스로 다시 그 벌레들을 내쫓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매미가 찢어지게 울면 여름이 한창인 걸 알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면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을 안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엄마의 눈 밑 애벌레들이 환태를 하고 날아가 버리길, 언젠가 맹꽁이 같은 그 떨림도 잦아들길 조심스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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