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내가 떠나기 전에 다 같이 외식을 하자고 했다. 물론 단순히 다가오는 내 출국일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번 끼니를 챙겨주는 엄마, 할아버지의 발작에 노출되는 막내, 뒷바라지한 사위 등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지도 모른다.
엄마가 회복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빠와 우리에게 상처를 줬다. 그건 바로 독단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이사시킨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는 이제부터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나 "오늘 저녁 아빠 시간 돼? 다 같이 밥 먹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준데."
아빠 "흥. 아빤 솔직히 할아버지랑 겸상하고 싶지도 않고 @#$^&!@"
역시나 아빠는 우리에게 툴툴거렸다.
그래도 오늘만은 날 위해 다 같이 밥을 먹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고 하자, 아빠는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할아버지는 식구들과 같이 밥 먹는 이 모든 순간이 좋았던 것 같다.
요 며칠 계속되던 히스테리는 고기 굽는 판에 사라진 건지 기분이 연신 좋으셨다. 입맛도 어찌나 좋던지 목살 한 판을 뚝딱 다 드셨다. 술을 안 드시는 할아버지는 물 잔을, 나는 막걸리 잔을 들고서 건배하자 할아버지는 마치 막걸리를 마시는 것처럼 '캬~'하고 소리를 내며 귀여운 햄스터처럼 웃었다.
다 같이 밥을 먹고 나온 길.
아빠와 막내 그리고 나는 소화를 시킬 겸 걸어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나 "히데요시, 오늘 잘했어. 막내야, 아빠 잘했다고 칭찬해 줘라."
막내 "잘했어."
아빠 "흥, 됐어."
이제는 희끗한 머리에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아빠에게서 왜 여전히 말 안 듣는 5학년 짜리 초등학생 남자애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제의 눈물이 무색하게 오늘은 제법 괜찮은, 평범한 하루가 된 기분이라서 마음이 들뜬다. 시원한 바람이 아빠의 등을 쓸고 우리를 지날 때 그래도 내일을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빠 "오늘은 할아버지 좀 괜찮았냐?"
막내 "아니.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했지. 근데 그 이후로는 조용함."
나 "그래도 오늘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아. 가끔 이렇게 외식도 하고. 다들 할아버지를 더 챙길 수 있을 텐데."
아빠 "그래! 내 말이! 오늘만 같으면! 그렇게 난리만 안 해도 어련히 알아서 잘 모시려고. 본인도 대접받고!"
도돌이표 같은 우리 집 사정.
기분이 수십 번씩 바뀌는 할아버지.
모두가 죽을 만큼 미웠다가도 불쌍해서 눈물이 나는 나.
뫼비우스 띠를 도는 것 같은 하루들 속에서도 뽀빠이 과자를 먹을 때 어쩌다 얻어걸리는 별사탕처럼,
오늘 같은 하루는 또 내일을 맞이할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