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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Sep 07. 2024

가끔은 엄마가 먼저 죽길 바라

할아버지는 "오늘은 내가 죽어야지!" 하다가도 당뇨 수치를 잰다. 어쩌다 당뇨 수치가 높게 오른 날이면, 동네 의원에 부리나케 간다.


보청기를 껴도 잘 들리지 않아 오늘은 의사가 하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나 보다. 급한 성격에 엄마와 할머니를 데려가지 않아 놓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할머니가 자신을 따라가지 않아서 의사 말을 못 알아들었다 또 난리다. 할머니도 할아버지 때문에 "아이고 내가 저 미친 영감 때문에 먼저 죽겠다."를 연발한다.


근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말이 끝나자마자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가정하면, 그래서 할머니가 할아버지 때문에 먼저 죽는다면, 엄마는 제정신이지 못할 테다. 게다가 우리 할아버지는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 것이다. 자기가 콱! 죽어버릴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으니.


역시나 제일 좋은 방법은 '순서대로' 가는 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이승에 맺힌 게 많나 보다. 매일 손수 자로 그은 표에 몸무게를 적고, 당뇨 수치를 재고, 주판으로 계산을 했다가, 유서를 썼다가 지웠다 수정하느라 바쁜 것이다.


이젠 잉크가 거의 다 떨어져 가는 펜으로 꾹꾹 눌러쓴 몸무게와 당뇨수치는 나이 든 할아버지의 손과 함께 떨려 양의 울음소리와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적지 않으면 죽음이 언제라도 자신을 찾아와 문을 두드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까. 매일 적어 내린 수치들은 그 흔들림 만큼이나 할아버지를 두렵게 하기도, 기쁘게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할아버지의 노트에는 신장에 좋은 음식이라던지 혈당에 좋은 음식들도 빼곡히 적혀있다.

얼마 전, 노트북을 오랜만에 써봐야겠다고 하셔서 노트에 적어 놓은 비밀번호를 찾는 걸 도와드린 적이 있다.

노트를 뒤지던 중 신문에서 오려낸 스크랩 하나가 떨어졌다. 신문에서 오려 낸 수목장에 대한 광고였다.

무심코 열어본 그 종이를 얼른 접어 할아버지가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을 때 다시 몰래 끼워놨다.

할아버지가 너무 밉지만 가슴이 아팠다. 나무가 된 할아버지를 상상하노라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파에 드러누워 입을 벌린 채 혼이 빠져나가듯 잠자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노라면 무엇이 저 힘없는 양반에게 그토록 내일을 갈망하게 만드나 싶다. 예전에도 그리 온화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떽떽거리기만 할 뿐 잔정도 많고 귀여웠던 나의 할아버지는 어느새 그저 삶에 집착하는 노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또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와 망상이 시작됐다.

주기가 빨라지다 못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이 병은 급기야 조용하던 막내를 움직였다.

막내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옷 갈아입고 나와."라고 박력 있게 한 마디를 툭 던지곤 차키를 들고 나와 시동을 걸었다.


엄마와 할머니를 다른 집에 두고 우리끼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내는 핸들을 꺾으며 내게 "할머니로서는 아닌데, 같은 여자로서 불쌍해서야."라고 말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럴 바엔 차라리 엄마가 먼저 죽는 것이 어쩌면 낫겠다고. 그러면 엄마가 이 꼴, 저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이미 전환 장애를 거치면서 막내와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어차피 누구나 죽는다. 순서만 다를 뿐. 엄마가 먼저 가 있으면 우리도 나중에 때가 돼서 엄마 곁으로 가겠지.

지금껏 착하게 잘 살았고 신앙도 있으니 엄마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갈 테다.


이게 무슨 막돼먹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가끔 최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이 상황이 못 견딜 만큼 아플 때가 있다. 그러니 그때 가서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려는 것이다. 마치 마비가 온 환자가 자신의 감각을 살피기 위해 못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 통증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 마냥, 나는 이렇게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 우릴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는 엄마와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또 불안증이 도졌다. 한동안 우리에게도 난리를 피우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스럽더니 받아줄 대상이 없자 조용해졌다.


결국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마지막 무기, 유서를 다시 쓸 뿐. 

할아버지가 요란스레 자개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뻔히 달력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대도 나에게 오늘 날짜를 물어본다. 어서 나를 봐달라고 시위하듯 말이다.


그러나 유서니, 돈이니 하는 것들은 그걸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한테나 유용한 무기일 뿐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다고 믿는 우리 엄마에게 그건 할아버지의 생각처럼 대단한 무기가 되지 못했다.


막내 "근데 돈 가지고 계속 저러니까 꼭 쌀보리 게임 같음. 줄까? 이러다가 보리~ 이러고 손 빼는 거지."


나 "미친. 넌 진짜 천재야! 큭큭"


막내 "아니 근데 저러면 사람이 줘도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에휴, 징그럽다' 이렇게 생각한다니까."


나 "그러게. 우리는 우리 할아버지라서 그냥 좋은 건데. 그렇게밖에 생각 못하는 할아버지가 안타깝지."


언젠가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돈을 더 주기 위해 할머니랑 싸운다는 소리에 나는 할아버지 보청기에 대고 할아버지가 열심히 번 돈이니 알아서 다 쓰고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할아버지의 표정은 얼떨떨했던 것 같다. 우린 '우리'할아버지라서 그냥 같이 사는 건데….

은행에서 일했던 적이 있던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녀의 애정에도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참 혼자 씩씩거리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거실에서 잘 테니 할머니와 엄마를 다시 오라 하라고 했다.

오늘은 거기서 자라는 우리의 말을 무시하고 결국 돌아온 할머니와 엄마.


엄마가 약을 깜빡하고 먹지 않을까 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미 문밖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오늘 하루 다른 집에서 잔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이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속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이 일었다.


나 '전생에 둘 다 연어였나? 뭔 놈의 귀소본능이 저렇게나 투철한 지.'


가슴에 쌓인 답답함은 계속 응어리지고, 화는 향할 곳을 잃고 계속 쌓인다.

막내와 한밤 중에 나와 운동장을 돈다. 바람은 부는데 내 마음은 가라앉지가 않는다.

어두운 밤하늘, 운동장 옆에 위치한 교회가 하나 보였다. 지붕 위에 십자가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하나님. 오늘만 이렇게 울게요. 부디, 내일은 웃게 해 주세요.'


나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걸까?

모두를 불쌍히 여기다가도 각자에게 저주를 퍼붓는 나는 어김없이 이곳으로 도망친다.

언젠가 읽었던 성경 한 구절이 기억난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 야고보서 3장 10절-11절 ]


한 입에서 두 가지가 나오는 나는 언제 단 물만 쏟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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