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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Aug 13. 2024

지옥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서

엄마를 입원시키느라 방아깨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겨울 방학이 지났다.


다시 맞은 여름방학, 나는 집에 왔다.

콩벌레를 잡고 놀던 우리 동네는 늘 이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정신병원을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결국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

아빠와 막내는 이미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마친 엄마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꾸 조차 할 수 없었다.


7월, 전국에 기록적 호우를 갱신하는 장마철이다.

그리고 장마철이 되면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의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의 미친놈‘, 이건 사람들이 하는 속된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보니, 엄마의 정신병은 외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 속에서 자라온 할아버지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 안에 내재된 삶에 대한 투지와 집념, 어떻게든 살아남는 생명력은 세대를 거듭해 내게도 전해져 있다.


부모의 잦은 싸움과 화풀이식 아동학대. 싸움이 끝난 뒤 자신을 때리는 게 무서워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으레 아궁이의 재 속에 몸을 파묻거나 짚에 몸을 숨기곤 했다던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


장성한 뒤 친자식임에도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이용하던 여동생. 결국 절연을 하게 된 할아버지. 학대와 폭력에 노출돼 있던 불우한 과거사에 비해 그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일제강점아래 일본어를 배워야 했던 할아버지. 그는 살아남아야 했던 불우한 시대상 속 부모에게 받은 사랑도 한참 모자랐지만 가정을 위해 술담배도 독하게 끊었다. 그가 ‘아는 한’에서 가정을 가꾸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할아버지가 서울 출장을 갔다가 사온 주황색 바지를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엄마, 그 당시 귀한 바나나를 처음 먹어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모를 보면 말이다.


할아버지 "서울로 출장을 갔는데 '어디가 옷이 싸요?'이러니까 남대문에 가면 애들 옷을 싸게 산다 하더라고."


34년생 개띠, 90살의 OOO 씨는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집도 사고,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용돈도 쥐어주고,

엄마를 데리고 이모가 사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노트북도 사용할 줄 알고.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장수할 체질'이라는 의사의 한마디에 활짝 웃는 노인이 되었다.


문제는 총명했던 젊은 날과 달리 이제는 정신적으로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과 의처증은 나날이 심해져서 이미 할아버지 때문에 한 번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엄마가

다시 영향을 받을까 걱정된다. 아니, 이미 받고 있지 않을까.


바뀐 점은 할아버지의 폭언은 늘 할머니를 향해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막내한테까지 번졌다. 처음으로 막내한테 시작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가 사람을 봐가며 하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고, 엄마야 본인이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한 일이라지만 막내는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엄마의 우울증을 지켜봤던 동생이 이번에도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할아버지는 엄마랑 할머니가 집에 없자(할아버지는 엄마와 할머니가 안 보이면 불안해하신다)

막내한테 물어봤다. 근데 막내가 대답도 안 하고 자기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막내에게 한소리를 하라고 했다. 결국 내가 터졌다. 사실 확인을 위해 막내를 불렀다.


나 "막내야, 할아버지가 물어봤는데 대답 안 했어?"


막내 "아니. 대답했어. 모른다고."


나 "할아버지, 대답했다잖아."


할아버지 "모르겠으면! '할아버지, 제가 잘 모르겠네요.'이렇게 말을 하던지! 그냥 무시했잖아! 평소에도!#!)#*%&!~!"  


동생이 대답했다는 게 밝혀지자 할아버지는 급기야 평소에도 자기를 무시한다며 성질을 냈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 "할아버지, 할머니랑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합하면 거의 200살이야.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다른 사람한테는 다 그래도 막내는 건들지 말아야지. 한 번만 더 얘한테 그러면 나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야."


온몸이 떨릴 정도의 분노로 소리를 지르는 나를 엄마는 말리려고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막내도 결국 터졌다.


비가 와서일까?

정신이 아픈 할아버지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기 부모님을 데려온 엄마에게도.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폭발했다. 어쩌면 엄마에 대한 분노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엄마식구인데. 엄마는 엄마의 부모님만 늘 먼저 선택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한바탕 난리 뒤, 엄마는 막내를 따로 불렀다.

뒤따라 들어가려다 두 사람도 얘기가 필요할 것 같아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작은 소리들이 웅얼거리는 것 같더니 문을 타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할아버지가 모르시는 것 같아도 예민해서 네 태도 다 느끼고 알 수 있으셔. 꼭 그래야만 했니."


태산같이 잘 참던 막내는 결국 "아악!"하고 단말마와 같은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칼로 찌르자 나오는 비명과 같았다. 나는 문을 열어볼 수 없었다.


1년에 아픈 날이 손에 꼽는 건강한 막내는 결국 그날 꼬박 날 밤을 새운 채 앓아누웠다.


내가 지금 이곳에 온 건 막내를 위해서일까? 할아버지 때문일까? 엄마 때문일까?


며칠 있지 않은 나도 집에만 오면 숨이 턱턱 막히고 갑갑한데 이곳에서 지내는 동생은 오죽할까.


집 주변 운동장을 돌면서 나는 생각을 한다. 이 가정환경은 나에게 주어진 브레이크라고.

삶을 질주하기만 하면 사고가 날까 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브레이크라고.

겸손하게 삶을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그저 그렇게 관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누구나 각자의 지옥 하나쯤은 품고 사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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