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언니, 난 우리 집에 오면 2주가 최대야."
나 "뭔 소리야?"
사촌 "난 엄마랑 안 맞아. 내가 세보니깐 딱 2주가 서로에게 제일 좋더라고."
똑똑한 사촌은 마치 생물을 보고 관찰 일지를 쓰는 과학자처럼 본인과 엄마가 함께 지냈을 때 괜찮았던 기간을 확인한 결과, 2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사촌 "이제 곧 2주 다 돼 가거든? 지켜봐, 내 말이 맞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2주 동안 별 일이 있겠냐 했던 나는 똑똑한 사촌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건 둘째가 아직 돌아가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날은 분명 둘째의 결심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가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을 구경하겠다고 해서 이모가 우리 셋을 백화점에 데려다준 날이었다.
이모 "7시까지 여기 1층 D입구로 데리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잘 놀고, 백화점 밖으로 나가진 말고."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변기도 크고 햄버거도 크더니 백화점도 우리나라 백화점이랑은 사이즈가 달랐다.
우리가 있는 입구에서 D 입구까지의 거리는 일직선으로 빠르게 뛰어간다 해도 짧은 내 다리로 몇 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가는 길목 중간중간마다 역시 자본주의 국가라 그런지 마케팅이 기가 막혔다.
캔디도 팔고, 예쁜 소품도 팔고. 그래서 한 눈을 판 것도 좀 있었다.
아니, 솔직히 몇 분 늦는다고 무슨 일이 나겠나 싶었다.
갑자기 사촌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우리도 걸음을 재촉했지만 D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7시 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이모는 조수석에 앉은 사촌에게 높아진 목소리로 짜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모 "너! 엄마가 7시까지 여기 나오라고 했지? 전화는 왜 안 받아? #%@^%*"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우리 앞에서 혼나는 사촌의 자존심도 상할 것 같았다.
아까부터 가지고 놀던 큐브를 만지작 거리며 얌전히 듣고 있던 사촌도 결국 속이 상한지 대꾸를 했다.
사촌 "아, 알았다고! 쫌!"
한 눈을 판 우리 때문에 혼이 나는 것 같아, 뒤에 앉은 둘째와 나는 서로 눈만 굴리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이모는 주체가 안 되는 짜증을 한바탕 쏟아낸 뒤, 가는 길에 아침에 먹을 빵을 사자고 했다.
나는 속으로 '지금 빵이 문젠가.' 싶었다.
하지만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황홀한 버터의 향기에 나는 아까 일은 그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 문제는 터졌다.
미국 관광을 하는 도중 추가비용이 드는 문제로 엄마랑 나는 전화로 한 판 싸움이 붙었고
할머니까지 전화가 와서 나에게 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한 게 섭섭하다며 한 소리 하려던 차,
나는 이리저리 쌓여왔던 울분이 터졌다. 결국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사촌은 그런 나를 달래줬다.
이모는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열린 방문 앞에 서 있었는데
사촌 "엄마가 중간에서 일렀지? 엄마는 왜 그래?"
이모 "내가 뭘!"
이모가 문을 닫고 나가자, 사촌은 나에게 말했다.
사촌 "언니! 내가 볼 땐 우리 엄마도 정신과 상담받아야 해."
나 "큭, 나 웃기지 마. 그리고 이모가 영어를 할 줄 알아도 모국어가 아닌데 상담을 편하게 할 수나 있겠어?
사촌 "아니야~ 내가 다 알아봤어! 여기 우리 집 근처에 한인 심리상담사도 많아."
나 "큭큭! 혹시라도 이모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너만 욕먹어."
사촌은 겉만 한국 사람이지 오랜 외국 생활로 속은 이미 외국인이다.
유교 사상이 여전히 강한 한국 부모님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는 자식이라니.
동그랗게 눈을 뜨며 이미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정신과 의사를 알아놨다고 말하는 사촌이 그 어떤 것보다 위로가 되고 웃겨서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사촌의 말대로 현재 사촌은 미국에, 이모는 한국에 지내면서 둘의 사이는 훨씬 좋아졌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간섭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나 뭐라나.
이모가 나이 들면서 안정을 찾은 것도 하나의 이유겠다.
물론 이모의 마음 안에도 어릴 때부터 받아 온 여러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모의 마음 안에도 넘실거리는 유리컵이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할아버지의 유전자는 섬세하고도 강해서 우리는 그 조각들을 모두 나눠 갖고 있었다.
한 때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연극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하고픈 게 많았던 그의 꿈들은 불우한 시대 속, 힘들었던 가정환경을 거쳐 한으로 맺히고,
조각들에 아로새겨져 별처럼 우리에게로 내려왔다.
이 조각은 빛나는 총명함과 섬세한 예술성을 지녔다.
사촌이 누구나 알만한 명문대에 들어간 것에도, 그 동생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미대에 합격하게 한 것에도 그 조각은 분명 제 '역할'을 다 했다. 하지만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던 사촌의 동생이 색약자 판정을 받고 진로를 바꾸게 한 것에도 그 조각은 '일조'를 했다.
이 조각은 어느 날 엄마를 미대에 가고 싶게 만들었고, 가게 했고,
막내가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 조각은 빛나는 것만큼이나 삶을 한 번에 전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되기도,
나를 찌르는 칼이 되기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평생 '이 조각'과 함께 살아가면서, 또 살아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