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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Oct 05. 2024

냉정과 열정사이

복분자 와인이 이렇게나 세다

갱도가 매몰돼 광부 두 명이 221일을 갇혀 있다 기적처럼 구출됐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도 갱도가 매몰된 것처럼 빛 한 점 들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려고 해도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입원시키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번엔 엄마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아빠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우리는 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모든 통장은 엄마의 명의로 되어있었다. 문제는 아빠조차 비밀번호를 몰랐다. 

아빠는 은퇴한 지 오래이고 계속 늘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하고자 우선 내 적금을 깨고 둘째에게도 돈을 빌렸다.


막내와 나는 엄마가 퇴원하고 난 뒤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상상을 하고 있었다. 꽃길만 걷는 미래를 그리기엔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기에 최악을 대비해야만 정말로 그 최악이 왔을 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써놨던 일기를 봤다.


엄마가 쓰러진 지 꽤 되었다.

쓰러졌다가, 잠깐 의식을 회복했다가.

결국 저번 주 화요일부터는 다시 입을 다물고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 친구들끼리 서로 놀리며 OO정신병원이나 가라고 했던 우스개 소리가 정말로 내 삶에서 일어났다. 

우리 엄마가 정말로 그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생각하니 갑갑하기도 하고 기분이 참 오묘하다. 

이래서 말조심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신다. 순간순간 까먹는 일도 많아졌다. 아빠는 지금 정신을 못 차린다.


막내는 엄마한테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엄마가 자기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벌이다가 우선순위를 잊고 우리 가족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가 정신적으로 아프고 힘들다는 걸 알지만, 지금 의식의 전원버튼을 끈 것도 결국엔 자기 의지로 그 버튼마저 꺼버린 것이 아니냐며 내심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현실적으로 엄마가 누워 있는 게 한 달이 넘어가면 엄마가 다시 걸을 수나 있을 것 같냐는 막내의 반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냉정과 열정, 그 사이 어딘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얼큰히 취한 아빠.

그리고 냉정한 태도를 취한 동생.

나는 그 사이 어디 즈음 서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 아빠가 남편에게 주려고 준비한 복분자 와인 한 병이 눈에 띄었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서러운 맘에 와인을 물 대신 꿀떡꿀떡 마시기 시작했다.


어떻게 누워서 잤는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아침이 된 것 같았다. 게슴츠레 뜬 눈 사이로 막내가 손에 츄르를 들고 나에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도 나를 향해 뛰는 막내의 손에 든 츄르를 보고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슬로 모션같이 보이기도 하고.. 막내가 다시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 츄르를 먹였다. 고양이들은 자기들한테 줘야 할 츄르를 나에게 주자 서로 먹기 위해 누워있는 내 몸을 마구 밟고 올라와 내 얼굴 가까이 자기들의 얼굴을 들이댔다.


'뭐지?'

갑자기 머릿속을 지나가는 기억.


띠리링-.


나 "으, 여보세요?"


아빠 "성당 안 와?"


나 "못 가. 몸 안 좋아."


아빠 "왜? 어디 아파?"


나 "어제 와인 한 병 다 마셨…."


아빠 "야!!! 술 잘 마시는 나도 와인은 함부로 안 마셔. 와인은 숙취 잘못 걸리면 @$!#^&$"


나 "몰라. 나 잔다."


아빠 "아 진짜 왜 그러냐.#@@^ 아빠 안 그래도 속상한데 너까지 왜 그래. 막내 바꿔봐!!"


뚝-.


그냥 끊고 다시 잠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아빠는 막내에게 전화해서 숙취해소제를 사다가 먹이라고 했다. 편의점에서 스틱형 숙취해소제를 사 온 막내는 곧장 나에게 달려왔고 우리 집 고양이들은 숙취해소제가 지들이 매번 먹는 간식인 츄르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나에게 왜 츄르를 먹이는지 어리둥절한 나도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술 김에 훌쩍이며 쓴 편지도 브런치에 하나 있었다. 

그 당시 호기롭게 어디 보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편으론 조심스레 부치고 싶은 편지이기도 하다.

끝이 없는 어둠을 헤매는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힘이 돼준 이들에게 쓴 편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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