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광야

민수기, 이스라엘인들의 광야

by 희지

창세기를 지나, 탈출기에 오면 모세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탈출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열번이나 완고하게 하신 끝에 이스라엘인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게 하시죠.


왜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 열번이나 재앙을 내린 끝에 이스라엘인들을 탈출시키실까요?

아마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일 겁니다. 열번의 재앙을 내리면서 이스라엘인들은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라고 말입니다.


'파스카 축제'때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고 하시는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을거에요.

반죽이 부푸는 그 짧은 순간에도 또 머뭇거릴까봐,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을 머뭇거리고

남겨두고 오는 것들에 미련을 가질까봐, 누룩이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시는 거죠.


사람들은 잘 바뀌지 않잖아요. 속된 말로 '죽어야 바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습관과 터전을 바꾸길 두려워합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하느님께서는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며 여러가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구약성서를 읽다가 많이 포기하게 되는 부분, 레위기죠. 레위기라 쓰고 '내위기'라 읽는다는. 그 레위기.


레위기와 민수기를 읽다보면, 왜 하느님이 열번이나 재앙을 겪게 하시고,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을 강조하시고, 누룩없는 빵을 먹게 하시고. 왜 그렇게 자꾸 세게(!) 하셨는지 조금 짐작이 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꾸 불평불만을 터뜨리거든요. 불평불만에 하느님이 불같이 노여워하고 벌을 내리셔도

그들은 청개구리를 삶아 먹었는지 자꾸 불평불만을 합니다. '이집트 땅이 좋았다'라고요.


제가 하느님이면 뒷목잡고 벌써 쓰러졌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시잖아요.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마침내 여호수아와 칼렙을 포함한 정찰대가 가나안땅을 정찰하고 돌아와서 그 곳에 있는 커다란 포도송이를 가져옵니다. 가나안이 얼마나 풍요로운 땅인지 저 포도송이의 스케일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여호수아와 칼렙은 가나안이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그 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우린 다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요.


하느님이 지켜주신다는데 도무지 왜 자꾸 의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이 지나는 광야가, 그 40년을 지내는 광야가 우리가 사는 삶이 아닐까 하고요.

우리도 하느님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불평하고

믿기만 하면 되는데도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니까요.


니콜라푸생.jpg 니콜라 푸생, <가을,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포도송이>


성경을 읽다보면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진도를 나가는 것 같고 답답하고 그러다가도 뒤에 가서 보면

하느님의 큰 그림이 보여서 신기한 적이 많아요.

우리 삶도 하느님이 벌써 다 디자인 해놓으셨을텐데,, 우리가 너무나 자주 유혹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구약을 읽으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 신앙을 기대합니다.

믿기만 하면,,, 저렇게 스케일이 다른 포도열매를 주실테니 말입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제 삶에도 주렁주렁 열리는 상상은, 해도해도 기분 좋은 상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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