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목말라, 물 좀 줘'
얼마 전 대구 위성 도시 경산에서
15세 소년이 왕따를 당하다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습니다. 유서도 공개되었습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적었습니다.
왕따 당한 사실을.
그리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마디.
"나 목말라. 물 좀 줘."
- 임재양의《의사의 말 한마디》중에서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가 왕따라면 어떨까?
친구로부터 소외당해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지 못한다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난 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좌절과 무관심은 숨쉬기 힘든 큰 절망일 테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내용 중에 혜원(김태리 분)도 어렸을 적 왕따를 경험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놨는데 엄마의 반응이 너무 쿨했다.
"너 괴롭히는 애들이 제일로 바라는 게 뭔지 알아?"
"니가 속상해하는 거."
"그러니까 니가 안 속상해하면 복수 성공!"
그래도 울먹이며 우울해하자, 맛있는 요리로 위로해준다. (크렘 브륄레)
밤을 쪄서 곱게 빻고 작은 컵에 담는다. 소스(어떤 조합인지 잊어버렸다)를 얹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린다.
설탕 뿌린 자리에만 불로 그을린 뚝딱 쉽게도 만들어주던 근사한 간식이다.
비주얼이나 색깔이 막 화려하지는 않았는데, 한 수저 입에 문 아이의 표정은 큰 위로를 받았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왕따로 힘들었던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진, 행복한 미소였다.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함.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처럼 나도 그렇게 쿨 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심을 갖고 저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면, 그냥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혜원의 엄마가 의도한 것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부모는 때로 분노와 화를 꾹 참고
불안과 초조를 티 내지 않으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가 보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호들갑 떨지 않고, 아이를 끝까지 믿고 지켜보는 일.
엄마가 되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가 아니어도 누가 되었든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줄 딱 한 사람.
내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 줄 한 사람.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그 한 사람은 누구든 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가 되었든, 그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