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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31. 2022

전쟁은 이 책으로 충분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해보자.
힘쓸 수 있는 남자들은 총을 들고 전쟁터에 불려 가고
 여자들은 늙은 부모와 아이들을 건사하며 집을 지키는 그림이 그려진다.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전쟁은 남자의 이야기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로 알게 된다.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이고 '남자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 들이다. 

소련,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한때는 같은 아군이었던 1941년~1945년, 독-소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p17~18) 


여자도 전쟁에 참여했고, 목숨 바쳐 싸웠다. 그러나 어떤 기록물에도 '여자'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저자는 오랜 시간을 참전한 여성들을 찾아다니고 주기적으로 만나며 이야기를 듣는다. 오랜 시간 삶의 영역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있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p29) 


생명을 품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모성을 가진 여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남자보다 더 힘겹게 적응해야 했다. 


전쟁을 경험한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로 전쟁을 체험한다.
간호병, 저격수, 빨치산 병사, 군 외과의, 위생 사관, 위생병, 통신병, 보병, 야전 세탁 부대 병사, 비행대대장, 고사포 병사, 운전병, 의사보조, 전투기 조종사, 빨치산 연락병, 지하공작원, 정찰병

전쟁터 한 복판에서 목숨 걸고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이의 증언이다.
피 묻은 옷을 빨래하느라 손톱이 다 빠지는 고통을 겪는 세탁병 이야기,
갓 태어난 아이를 업고 위장한 채 빨치산 연락병을 수행하는 위태로운 이야기,
숱한 죽음을 보고, 고통과 싸우는 부상자를 지켜보며 힘들어하는 의사와 간호병의 증언들,
소녀의 몸으로 자기보다 1.5~2배는 무거운 부상당한 아군을 진지까지 끌고 오는 순간들,
매복지에 몸을 숨기고 백발백중으로 적을 사살하는 저격수들,
먹고, 입고, 자고, 씻고...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전쟁터에서도 필요했다.  


숱한 죽음과 부상병을 목격한 생생한 이야기들은 참혹함과 고통의 비슷비슷한 이야기이면서 별개의 사건으로 읽힌다. 서로 다른 희생자의 수만큼이나 처절한 아비규환이었음이 분명한데 아늑하고 편안한 집에서 읽고 있자니 감히 그 상황이, 그 심정이 짐작 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전쟁은 끝났지만 생존자 모두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생존해서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젊은 나이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가족이 다시 뭉쳤으면 다행이지만 가족 중 누군가는 죽고, 행방불명이고, 부상당한 채였다.


여자에게는 억울하고 원통하게도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의 이미지는 부정적이고 기피 대상이었다. 심한 경우 가족에게서도 내쳐졌다. 남자들은 영웅으로 칭송받고 대우받는데 반해 여자들은 오히려 숨기기에 바빴다.

전쟁터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도왔고, 같은 전우일 때는 여자라고 환영받았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참전 여군을 창녀라고도 했고 사람을 죽인 끔찍한 사람이라는 혐오의 눈길을 보냈다. 허 참, 이 얼마나 기가 차고 원통한 일인지.
토끼를 잡았으니 더 쓸모 없어진 사냥개는 삶아 버린다는 '토사구팽'이 떠오른다. 


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 예쁘게 미소 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또 배신했다.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출판사 리뷰 발췌) 


크고 작은 부상으로 평생을 고생하거나 결혼도 못하고 외롭게 늙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비행기 소리 나 큰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고 밤마다 악몽을 꾼다.
피를 닮은 빨간색을 견디지 못해 꽃집도 마음대로 지나지 못한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전쟁이 막 끝났을 때니까, 스무 살이었어. 물론, 그때 나는 결혼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어. 너무 지쳐서. 내가 동갑내기들보다 훨씬 나이 든 것 같았고, 어떨 땐 늙은이가 된 것 같고 그랬지. 친구들은 춤추러 다니고 즐겁게들 사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인생을 나이 든 사람의 눈으로 바라봤으니까. 다른 세상의 시선으로... 노파의 시선으로!" (p266) 


책을 덮고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1. 전쟁은 어떤 경우라도 옳지 않다.
2. 참전용사들은 남자든 여자든 차별 없이 모두 존중받고 보상받아야 한다.
3. 아픈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읽히니 겁내지 말고 일독하실 것을 권한다. 


전쟁은 책에서 경험한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이 책을 완성한 작가는 지옥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제는 벗어났을까. 여전히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러 다니는 건 아닐지.

큰 진실 하나를 세상에 내놓은 저자가, 전쟁 이야기에서 그만 벗어나 행복해졌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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