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한지수-
7편의 단편 소설이다.
가만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미란다 원칙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
천사들의 도시
배꼽의 기원
이불 개는 남자
페르마타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내가 하는 실수는 자꾸 코칭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거다.
나 스스로도 잘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하라고, 거기서 멈추라고, 다시 생각하라고...
이런저런 오지랖을 부린다. 현실에선 타인의 삶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한 사람이 평생에 부릴 수 있는 오지랖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9할 이상은 쓰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또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 보인다.
가까운 이의 조언이 있더라도 마이웨이 할 것 같은 인물들이다.
'페르마타'가 기억에 남는다.
치과의사인 주인공은 착한 아들, 좋은 남편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꾸역꾸역 원하지 않은 길을 가며 안정적인 삶의 레일에 올라섰는데, 몸이 아프다. 공황 장애.
특별히 긴장되는 상황도 아닌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이 일상 안으로 까지 들어온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 통증, 호흡 곤란, 아찔한 현기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한다.
저런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공황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구하는 수단이라는, 그 말이, 맞는 거 같네요." (p244)
지금의 내 몸은 그동안 내가 반복해서 살아온 삶의 성적표다.
스트레스를 적금 넣듯이 꼬박꼬박 넣고 있지는 않는지,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음식을 넣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의 내 몸은 성실하고 정직하다.
페르마타는 악보에서 사용하는 기호로 2~3배 길게 늘여서 연주하는 거라고 한다.
공황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인공을 구출해서 남은 생은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면서
두 세배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절반 이상이 일인칭 시점이라 잘 읽힌다. 서사가 있어서 책장도 잘 넘어간다.
급하게 선선해진 가을, 올해는 더 짧을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