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닐 셔스터먼-
2042년, 유토피아 세상.
인류는 드디어 죽음에 대한 해법을 찾았고, 불사(不死)의 존재가 되었다.
슈퍼컴퓨터 '선더헤드'는 인간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굶주림, 질병, 전쟁,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롭다.
완벽한 유토피아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점점 늘어나는 인구수다.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고, 선더헤드는 그 일을 인간에게 맡겼다.
선더헤드가 유일하게 관여하지 않는 일이 수확령, 수확자의 영역이다.
사회적으로 허가받은 살해자, 사람들은 그를 '수확자'라고 불렀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수확자가 필요해졌다.
수확자는 일정한 관문을 통해 수습생으로 선택된다.
수습생은 수확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최종심사를 통과하면 수확자가 된다.
인간들은 수확자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이 박스석은 극장 이사에게 받았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수확자에게 공물을 바치면
수확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나에겐 그 사람을 거둘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지만,
지금 그 사람은 자기 선물이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p48)
물건, 집, 차, 음식, 가장 좋은 것들을 인간 스스로 기꺼이 제공한다.
수확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특권은 여지없이 반복된다.
내가 수확의 대상이 되었을 때,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뭔들 못 주겠는가.
그럼 수확대상자는 어떻게 선별하는가? 그건 수확자의 몫이다.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그 기준대로 거둘 대상자를 고르는 수확자가 있고,
아무 기준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대상자를 뽑는 수확자도 있다.
소설은 두 명의 어린 수습생이 주인공이다.
열여섯 살의 시트라와 로언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습생으로 선택당했다.
둘 중에 한 명만 최종 수확자가 될 수 있다. 둘은 경쟁자이면서, 가장 가까운 동료다.
소년 소녀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수확령. 수확령은 하나의 또 다른 세계였다.
최고위 책임자가 있고, 크게 2개의 정치적인 파가 존재한다.
유토피아에 존재하지만 선더헤드의 간섭을 받지 않는, 특권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다.
고인 물은 썩고 부패하기 쉽다. 초심은 잃어버리기 쉽다.
수확령 규율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부패하고 타락한 수확자가 생겨났다.
수확자의 특권을 악용하고 철저히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다.
수확자는 각자 자신의 스타일대로 수확한다.
1년에 260명을 수확해야 하니, 평균 일주일에 다섯 명을 거둬야 한다.
보통은 한 사람씩 수확하고 꾸준히 수확량을 채우는 형태로 진행된다.
반면, 특정 집단을 모두 수확하는 방식으로 몇 번의 출동만으로 1년 치 할당량을 채울 수도 있다.
수확령의 규율에 어긋나지 않으면 수확방법은 개인의 방식을 존중한다.
"(...) 나는 새로운 수확자들이 무슨 대단하고 우월한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생명을 빼앗기를
즐기기 때문에 선택받는 날을 그린다. 결국 여긴 완벽한 세상이 아닌가. 완벽한 세상에선 우리 모두
자기 일을 사랑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수확자 고더드의 [수확 일기]중에서- (p191)
신진 파는 수확을 게임이나 스포츠처럼 즐기고 한 번에 대량으로 수확한다.
어떤 직업이든 어차피 해야 할 일, 효율적이고 즐겁게 할 방법을 찾는다.
짧은 시간,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아웃풋을 내는 사람을 우린 능력자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생명을 거두는 수확자의 일에도 효율과 즐거움이 필요할까?
희생자의 고통을 즐기고, 죽음을 사냥하는 수확자라니... 고더드는 그저 잔인한 학살자로 묘사된다.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여기는 고결한 수확자들이 반대편 진영에 자리한다.
보수파 수확자들은 한 사람씩 수확 대상을 고르고, 대상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죽음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고, 수확하는 일이 매번 처음인 것처럼 어렵다.
수확하는 일이 익숙해질까 봐 두려워한다. 마음을 단속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빌런의 수확자에게는 로언이, 고결한 수확자에게는 시트라가 배치되어 수습 생활을 시작한다.
운명은 얄궂게도 둘 중에 한 명은 수확자가 되고, 탈락한 수습생은 수확당해야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살아서 수확자가 되거나,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책을 읽으며 몇 가지 궁금한 게 떠올랐다.
1. 선더헤드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는데, 왜 사람을 죽이는 일만 인간에게 맡겼을까?
2. 전쟁과 질병이 없는 죽지 않는 세상이 오면 어떨까? 고혈압, 당뇨, 암에 걸려 고통받지 않아도 되고
다이어트와의 전쟁도 없는 세상. 영원히 죽지 않고 언제든 회춘을 통해 젊은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
사는 게 재미있을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의미 있고, 유한한 생명이라야 더 알뜰하고 애틋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산 사람은 3백 살 정도인데, 그건 우리가 아직 사망 시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후, 평균 나이가 1천 살에 가까워지면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가 모든 예술과 과학에 능한 르네상스의 아이들이 될까? 숙달할 시간은 충분하니 말이다.
아니면 지루함과 독창성 없는 일과가 지금보다 더 우리를 좀먹어, 무한한 삶을 살아갈 이유가 줄어들고 말까?
나는 전자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후자가 되지 않을까 의심한다." -수확자 퀴리의 [수확 일기]중에서-
3.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과 예고 없이 죽음에 이르는 것 중 어떤 게 좋을까?
"왜 오늘 그 남자를 경고 없이 거두신 거죠? 적어도 칼이 꽂히기 전에 상황을 이해할 자격은 있지 않았나요?"
"모든 수확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지. 그게 내 방식이야. 사망 시대에 죽음은 아무 경고 없이
찾아올 때가 많았지. 우리가 맡은 일은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훔친 일을 흉내 낸 것이니, 그게 내가
재현하고자 하는 죽음의 얼굴이다. 나의 수확은 언제나 즉각적이고 언제나 공개적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잊지 않게끔."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할 정도는 줬으면 좋겠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일.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홀가분할 거 같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가독성 좋은 소설을 만났다. 페이지가 많지만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금방 읽게 된다.
책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이 추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