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물에 빠져 죽다
개구리, 물에 빠져 죽다
개구리 알이 우리 집에서
올챙이로 깨어났어요
헤엄치며 잘 놀더라구요
뒷다리 앞다리
다 나왔는데요
개구리가 되더니 죽어버렸어요
물에 빠져서요
개구리를 묻어 주며 알았어요
개구리에게 숨 쉴 땅을 만들어줘야 했다는 걸
놀이터 하나 만들어 줬으면 됐을 것을
물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개구리를 키우시는 여러분
개구리에게 놀이터를 꼭 만들어 주세요
돌멩이 하나면 돼요
잠시 숨 쉴 곳이 필요해요
- 김미희의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중에서 -
아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도 올챙이를 키웠었다.
올챙이가 하루가 다르게 통통해지고 키가 커질 때 불안했다.
올챙이 뒤에 변태될 개구리까지 보는 게 두려웠다.
또 온 방을 뛰어다니는 상상에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남편도 나도 손으로 만질 자신이 없어서 개구리 뒷다리가 나오자마자 호수에 놔준 적이 있다.
시를 읽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같은 실수를 했을 것 같다.
집에서 올챙이는 제법 큰 어항에서 자라고 있었고,
어항 속은 휑하니 돌멩이 같은 것은 없었다.
개구리 놀이터가 있었더라도 온 방을 뛰어다니지는 않았을 듯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괜히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개구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않는 모양이다.
우물이나 어항이 세상의 전부라는 착각에 다른 생각이나 도전 따위는 시도하지 않는다.
어항을 벗어나면 위험하긴 해도 재미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던 예비 개구리처럼 ,
온 방 여기저기를 여행하기보다는 하루 종일 우물이라 불리는 어항 내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우물에는 숨 쉴 공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물을 벗어날 수 없다면 쉼터의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
개구리와 사람이 다른 점은 개구리와는 달리 사람은 직접 쉴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구리에게도 사람에게도 돌멩이 하나쯤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