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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r 22. 2017

32 상대를 설득하는 일

"제 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고통을 주는 제1의 화살을 맞은 뒤, 스스로 그 고통을 되새김질해서

제2, 제3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지 말라는 거예요. 


      -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 중에서 -



나는 애교가 없다. 
더러 남편이나 아들한테는 애교를 떨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애교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낀다.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난관이 생길 때 흔히들 애교를 부려 원하는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방면에 소질이 없는 난 애교 부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상대가 정한 원칙과 룰을 최대한 맞추려 한다. 

부탁할 일을 만들지도 않고 사정을 봐달라고 호소할 일도 만들지 않는다.


작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동네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찾는 단골 병원이다.

출근 전에 진료를 받고 가려고 병원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나는 코감기로 진료를 받고 아들은 목감기로 진료예약을 하려던 참이었다.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 근무하는 작은 동네 병원이다.  
진료예약시스템 같은 환경은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전화 예약도 받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유능한 의사 덕에 병원은 언제나 만원이다. 
대장에 수기로 진료신청을 하고도 평균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런 구조를 환자들 대부분은 알고 있어서 우선은 병원에 가서 예약을 해놓고 

다른 일을 보거나 집에 갔다가 시간 맞춰 다시 병원을 찾는다.


그 날의 문제는 아들은 학교에 간 상태여서 하교를 한 4시 30분에나 병원에 들를 수 있다는 거다. 
예약을 했더라도 수시간 지나 나타나지 않으면 예약이 취소된다는 거였다. 
오후 진료 예약은 따로 없고, 진료를 받기 위해선 3시 넘어서 재방문을 해야 한다는 거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진료 예약을 위해 휴가를 써야 되나?’
‘학교 끝나고 예약하면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할 테고... 학원에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학원을 빼먹어야 되나?’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 타협이 가능한 부분이 있을까 먼저 점검해 본다.  
‘없다!'  

내 선에서 양보할 부분은 없다고 결론이 난다.


그렇다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방향으로 머릿속 핸들을 꺾는다. 
“오후 진료 대장을 만들면 되지 않나요?”
“지금 예약은 걸어놓고 갈 테니, 취소를 안 시켜 주시면 될 거 같은데요.”
“지금은 학교에 갔고 학교 끝나면 그 시간이에요. 학원 시간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를 못해요.”
“병원을 안 간다는 걸 억지로 꼬셔놨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불쌍한 표정을 함께 짓는다)


간호사는 똑같은 대답으로 일관한다. 

단호박이다. 융통성이 없고 타협의 여지가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병원에 이런 규정은 누가 만든 거야?’
‘의료도 서비스업인데, 이건 누굴 위한 거지? 일하는 사람만 편한 거 아냐?’

‘병원 진료받으려면 최소 두 번은 왔다 갔다 해야 되는데 이게 말이 돼?’
‘요즘 네트워크로 집안에 있는 사물도 제어하는 세상인데, 이 병원은 21세기를 역행하나?'
'인터넷 예약시스템 하나 안 만들어 놓고 환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잖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융통성 정도는 발휘해야 되는 거 아닌가?’
‘예약 환자가 많으면 일이 많을 거고, 일이 많으면 퇴근이 늦어져서 그것 때문에 그런가?’


평소 안면이 있는 간호사인데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 서운했다. 

같이 애를 키우는 입장에 야박하다고도 느꼈다. 

조목조목 따져볼까 싶다가 ‘에잇. 딴 병원 가야지. 

병원이 여기 한 군데인가’ 싶었다. 
다른 병원에 간다 해도 간호사는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월급 받는 직장인에 불과할 테니. 
패배감을 느꼈다. 력감을 느꼈다. 

화가 났다. 아침부터 기분이 왕창 상했다.


출근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이런저런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한다.
병원 원장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내가 (주제넘게도) 하고 있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헛웃음이 났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른 병원엘 다녀왔고, 아들은 괜찮다고 병원에 안 가도 되겠다고 한다. 
그러다 늦은 저녁에 ‘목 캔디’라도 사달라고 요구한다. 

증상은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약국에 가서 목감기 약을 사 들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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