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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Apr 03. 2017

38 연필을 가지고 놀다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 아들이 스스로 연필을 잡았다.

너무 신기해서 카메라로 증거사진을 찍었다. 절대 설정 사진이 아님을 밝힌다.

순간포착을 잘 했다. (나는 회사에 있을 시간이고, 외삼촌이 찍고 외할머니가 증언했다)



세상에 나와 울고, 웃고 하는 일부터 아이가 하는 모든 표정과 몸짓은 기적이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거기에 훌륭한(?) 행동까지 하면 부모는 영락없이 착각한다.


'공부를 잘하려나 봐'

'천재인가?'


이때부터였을까?

아들은 몸 쓰는 일보다 머리를 쓰는 일이 적성에 맞아 보였다.

엄마, 아빠가 몸 쓰는 일에는 젬병이다. 

특히나 나는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스트레스였을 정도로 힘들었다. 

피구, 배구, 발야구 등 공을 이용한 운동은 두렵고 무서웠다. 

그나마 달리기, 줄넘기, 배드민턴 정도는 나았지만 그런 종목을 다루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그런 부모를 만났으니 

아들의 체육시간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가 조금 커서도 밖에 나가서 놀리는 대신, 방 안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을 선호했다. 

주로 '그림 그려주기' 시간이 많았다.

그림에는 큰 소질이 없지만, 아이들에게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중요하다.

빈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물고기를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도 자동차도 숱하게 그려줬다. 

그림을 그려주면 그리는 종이에 자기도 그려보겠다고 따라 그린다. 

추상화라 불릴만한 패턴 없는 선의 나열이다. 

아들의 '낙서'로 그림을 멈추면 아들이 손을 이끌고 빨리 그림을 더 그리라고 재촉한다.


저렇게 기어 다닐 때에 아들의 하루는, 동물이 나오는 비디오 쪼금 보고, 책 좀 읽어주고, 

수시간에 한 번씩 우유 먹이고, 낮잠 재우고, 그림 그려주고, 

장난감과 조금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하면 하루가 끝이었다.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똑같지는 않은 하루가 이어졌다. 

아들의 에너지가 점점 많아져 양육자의 피로도가 서서히 증가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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