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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07. 2017

48 '반시'를 먹으며

2005년, 아들은 다섯 살이다.


2005년 달력이 마지막 한 장 남았다. 

일 년의 대부분이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겨울의 한 복판에 들어섰다.

과일가게에서 '반시'를 샀다.


반시?

반시가 뭐지?


도대체 뭔지는 모르지만, 아들과 어머니가 감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잘 생기고 큰 놈 끼리 모여있는 반시 한 상자를 집어 들었다.


마트에서 사들고 온 짐 정리를 마무리하고, 식탁에 앉아 숨을 고른다. 감을 먹어보려고 예쁜 녀석으로 골라 한입 베어 물었다.


왈칵! 

본능적으로 뱉어버렸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떫은 느낌, 심하게 떫어 양치를 하고 물을 연달아 마셔봐도 없어지지 않는다.

뻑뻑하게 혀끝을 마비시키는 불편한 느낌.


'반시'의 첫인상은 꽤 오래 강렬한 상태로 계속되었다.


반시는 시간이 필요했다. 박스채로 한 구석에 모셔두었다. 며칠 뒤 상태를 확인하는데 누군가가 한입 베어 물은 흔적이 있다. 아들이 그랬단다. 고생 좀 했을 텐데 싶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그 뒤로도 한 달 가까이 익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만져보니 좀 말랑말랑해져 있다. 이젠 때가 되었나 싶어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 한입 물었는데, 아직도 완벽한 홍시는 아니다. 껍질에서 가까운 부분은 여전히 떫은맛이 남아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건가. OTL


언제쯤이면 맛있는 홍시로 먹을 수 있을까?


문득 사회생활을 하는 내 모습이 이런 덜 익은 떫은맛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 노릇도 여전히 반시의 모습이고.

회사생활 년수로 본다면 푹 익은 홍시여야 하는데, 그 깊음이나 넓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떫은맛이 남아 있는 더 익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감'이지만, 입으로 느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그 맛. 

절대 잊히지 않는 그 맛.

반시를 경험하면서 이제 반시가 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거창하게 인생까지 엮어서 생각에 빠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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