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May 03. 2017

47 욕을 1등으로 잘 할 필요는 없잖아?

부모에게 아이는 부모-자식 관계가 전부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안에서 생활하는 아이를 관찰할 기회는 없다. 아이가 활동하는 사회에서 활발한지, 내성적인지, 자신감 있는 아이인지, 수줍음이 많은지 알 수 없다. 집에서 보이는 아이는 자신감 있고 활동적이고 큰 고집부리지 않는 착한 아이다. 그런 모습이 사회에서도 똑같을지 궁금했다. 가끔 (학원) 선생님께 듣는 이야기가 전부인데, 선생님들은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경향이 있다. 학원비를 내는 엄마는 그들에게 ‘VIP 고객’이니까. 


워킹맘인 내게 아들은 더 궁금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의 모습,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모습이 궁금했다. 퇴근해서 짧은 저녁시간에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으니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물어봐도 자세하게 재잘대지 않는다. 말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


초등학생이 되니 집에 간간히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 평일에는 물론이고 주말에도 데려온다. 관찰할 기회가 생기니 오히려 친구 데려오는 일을 장려한다. 


“오늘은 친구들 놀러 안 오나?”


격주로 토요일 등교를 한다. 하굣길에 마중 갔다가 친구를 자연스럽게 데려오기도 한다. 

아들을 관찰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일하는 엄마여서 아들과 친구들에게 간식 챙겨주는 일에 소홀하다는 죄책감이 있다. 종종 친구 집에서 간식을 얻어먹었다는 아들의 말에 은혜를 갚을 시간이라고도 생각했다. 


초등 3~4학년쯤이었는데, 남자 친구만 셋이 한 방에 모였다. 또래답게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에 빠져있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같은 게임에 접속해서 하는 네트워크 게임이었는데, 서로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며 신나게 떠든다.


“ㅇㅇ아 나 있는 대로 와, 빨리빨리 와봐. 쫌 도와줘”

“주연아 나 미네랄 좀 줘봐”

“미쳤냐, 미네랄 나도 없고, 있어도 못 주지~이”

“치사한 놈.”


따로 엿듣지 않아도 흥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나온다. 아들 방에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부담스러워할까 봐 드나들 핑계를 찾아가며 가능한 노출시간을 늘린다. 한번, 두 번,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낯이 익고 잔소리 안 하는 아줌마, 편한 아줌마 이미지를 조금씩 쌓아갔다. 


조금 친해진 어느 날, 나도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수다를 떤다. 

학교생활을 은근히 물어본다. 아이들 말에 장단을 맞춰주며 떠들다 ‘욕’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친구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주연이가 우리 반에서 욕을 1등으로 잘 할걸요!”

“야~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아들이 고발자를 향해 장난스레 폭력을 휘두른다.


“아냐, 아냐. 엄마. 오해야. 그렇지 않아” ㅎㅎ

“욕도 제일 많이 하고, 제일 잘 한대요~!”

“헐~, 아들의 새로운 발견인데." (장난스럽게 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히죽히죽 대다가 깔깔대다가 한다. '너의 고통은 나의 즐거움이다' 하는 표정이다. 

아줌마가 크게 혼내지 않을걸 알아챈 모양이다. 

집에서만 보아온 아들, 욕을 전혀 안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모르는 아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좀 실망스러웠다. 좋은 것도 아니고, 욕을 한다니.

아이들과의 어울림에서 혼자 깨끗한 척, 바른 척을 기대하진 않는다. 나쁜 것, 좋지 않은 행동 같은 것은 보통의 아이들 수준만큼이면 충분하다.


집에서는 그 잘 쓰는 욕이 튀어나올 때 어떻게 참았을까. 

어른과의 대화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언어구조가 다르게 작동하나? 

암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 기분은 씁쓸했지만.


친구들이 돌아가고 조용히 한마디만 해줬다.

“근데, 공부도 아니고 욕을 1등으로 잘 할 필욘 없잖아, 아들?" ^^

 물론 장난스럽게, 얼굴에 웃음을 띄면서. (마음은 진심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46 수학 공부 방법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