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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01. 2017

67 엄마 표창장

                                                                                       

2012년 겨울, 아들은 초등 5학년이다.


요즘 내내 우울모드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또 한 해를 보내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에 마음이 무거워졌었다. 한없이. 


내년이면 회사생활 20년 차. 좀 있으면 중년의 나이 40대다. 회사 다니며 꼬박꼬박, 차곡차곡 쌓인 월급통장 말고는 이룬 게 뭐가 있나 싶었다. 뭘 더 이뤄야지? 사회적인 성공? 유명세? 가만 따져보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뭔가도 없다. 그런데도 뭔가 허하다. 이런 게 갱년기인가? 벌써 갱년기 운운할 나이인가? 아니겠지 하며 애써 부정해 보지만 여전히 마음이 공허하다. 20과 40이라는 숫자가 계속 머릿속에 박혀서 감정을 자꾸 흔든다. 


당장 내일, 한 시간 뒤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 수도 있고,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나쁜 일이 일어날 수 도 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겠다고 돈과 시간과 행복까지도 뒤로 유예하며 지냈던 바쁜 날들이 스쳐 지난다. 그렇게 감내한 날들이 갑자기 불행이 덮쳐오면 얼마나 후회가 될까. 얼마나 억울할까 싶었다. 


나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가족을 위해 내 즐거움을 양보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생각이 자꾸 커져갔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감정 기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트를 탄다. 별일 아닌 일에도 파르르 한다. 짜증과 분노를 토했다가 이유 없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 스스로를 깊은 독방에 가두고 병과 약을 번갈아 가며 주곤 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우연히 본 김창옥 교수의 강의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내게 해주는 말 같아서 눈물이 났다. 


지쳤나 보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선물]을 좀 해야겠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내 기분이 꿀꿀해 있으니 아들이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다. 이런 나를 알아주는 건 남편보다 아들이 좀 더 빨랐다. 계속 이유를 묻길래 이런 마음의 시끄러움을 토해냈더니 즉석에서 '표창장' 하나를 만들어서 내민다. 


깨끗한 A4 지에 상장처럼 상/하, 좌/우에 큼지막한 여백을 주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정성이 느껴지는, 손으로 쓴 상장이었다. 한글에 오타도 없고, 아들의 싸인까지 들어간 그럴듯한 상장이었다. 

이런 아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들 고마워. ♥



                           표창장

                                                  엄마 주ㅇㅇ


      위 엄마는 20년 동안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주연이를 키우고

      가족의 일원으로 가정을 꾸리고

      말 못 할 정도로 많은 다수의 일을 

      하였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2012년 12월 27일

                                   아들 ㅇ주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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