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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15. 2017

76 가슴이 뛴다

2011년 9월, 아들은 초등 4학년이다.


날이 좋았던 가을 어느 날. 아침을 먹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했던 말이다. 


"엄마! 나 예전에 ‘가슴이 뛴다’ 란 말이 되게 무서웠다." 하며 웃는다.

"가슴이 뛴다는 말? 그 말이 왜?"  

"가슴이 툭 튀어나와서 막 뛰어다닌다고 상상하니까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거야!" 


말을 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툭 떼어내서 가슴이 마구잡이로 달리는 포즈를 취한다.   

허걱. 그렇구나.   

물리적으로 가슴이 저 혼자 떨어져 나와 따로 존재하며 혼자 뛰어다닌다고 생각하니 무서울 만도 했다. 가슴이 따로 존재하면 본체를 잃어버린 몸은 죽은 건가? 따로 존재하며 살아있기도 하나? 가슴이 뛰는 순간만 일시적으로 죽나? 내가 생각해도 섬뜩하다. 그런 상상력이 재미있었다. 


지금도 아이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을 아들이 단어의 뜻을 알고 이해해 갈 무렵에 있었던 상상이라고 한다. 그 생각을 하면서 혼자 가슴 졸이며 무서워했을걸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도 나고, 왜 혼자 끙끙대며 무서워만 하고 있었을까? 왜 엄마나 아빠한테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 엄마, 아빠는 출근하고 없었나? 그랬을 확률이 높긴 하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엄마! <낢 이야기>에도 그런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밥 먹는 배 따로', '간식 먹는 배 따로' 이렇게 나와!" 

"가슴이 뛴다는 얘기도 그 만화에서 본거야?"

"아니.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한 거고. 배 이야기만 나와!"


역시 손으로 자신의 배를 반으로 떼어내서, 왼쪽 오른쪽에 분리시켜 놓는다. 밥 먹는 배는 왼쪽에, 간식 먹는 배는 오른쪽에 위치시킨다. 그 만화를 보면서 자신의 옛(!)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귀여운 녀석.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 신선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사라진다. 생각할 게 많아지고, 머릿속에 저장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는데 한가한 잡생각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일상의 해야 할 일은 어른이 되어갈수록 많아진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일에만 매달려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시간 낭비로 생각되는 상상은 어린이일 때만 누릴 수 있는 잠깐의 호사인지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더 각박하고 획일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는 말과 비례한다. 


최근에 와서야 ‘창조적 인재’ 니,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화두로 새로운 경쟁력을 얻기 위해,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것 같다. 성과가 높고 훌륭한 인재가 되려면 꼭 갖춰야 하는 덕목처럼 강조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함께 멈춰진 그 재미난 활동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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