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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22. 2017

77 덜렁대는 성격

                                                                                      

2013.2.15 졸업식 겸 봄방학


오늘은 종업식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정말로 끝나는 날이다. 

아침에 늦게까지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던 아들. 아침마다 아들을 깨우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얼른 일어나, 이제 진짜 일어날 시간이야”

“아직이야? 안돼에~ 일어나 어서.”


겨우 깨우고 밥 먹고 옷 입고 가방 정돈까지 하고 출발하려는 찰나다. 아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엄마의 싸인이 필요한 가정통신문을 찾는다. 오늘은 “꼭” 가져가야 한다며 열심히 찾는다. 허둥대며 이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찾는다. 

‘그렇게 급하고 중요한 거면 미리미리 챙겼어야지’ 하는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아침이니까, 자중하자. 기분 좋게 시작해야지’ 꾹꾹 눌러 참는다. 

시간이 계속 지체되어 함께 찾아봤으나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꽁꽁 숨었는지 도저히 못 찾겠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8:40분까지 등교여서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냥 집을 나선다. 학교 가는 길에 신호등을 하나 건너야 하는데, 신호등까지 걷는 길에 계속 짜증을 부린다. 


“왜 엄마한테 짜증내? 엄마가 잘못한 거야?”


그 뒤로는 짜증을 부리진 않았지만 얼굴 표정은 숨길 수 없다. 자기 자신한테 짜증이 난 걸까? 

헤어져서 출근하는 길,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심하게 혼났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야겠다.’ 

‘프린트해서 제출할 수 있는 거면 저녁에라도 준비해놔야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조금 있으려니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 액정화면에 ‘오x명 선생님’이라고 발신자 이름이 뜬다. 

‘헉! 뭔 일이지?’

전화를 받으니 주연이다. 

“엄마! 수학여행지 어디가 좋겠어요? 경기도? 강원도?”

“그것만 선택하면 되는 거야? 너는 어디 가고 싶은데?”

“나? 나는 강원도”

“그래? 그럼 강원도에 한 표 해!”

“알았어요. 안전히 오세요” 


목소리는 혼난 것 같지도 않고, 막 기분 좋은 목소리도 아니다. 덤덤한 목소리다. 별일 없었겠지?

언제부턴가 전화 끊을 때 마지막 인사가 언제나 ‘안전히 오세요’다. 이런 인사말도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걸까? 처음 들었을 땐 심쿵 했다. 쪼그만 아들도 엄마의 안전한 귀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고마워서 감동도 했었다. 근데, 지금은 자주 들어서 당연한 말이라 마음에 물결이 일지는 않는다. 아침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말이기도 하다. 지금 막 출근했는데, 벌써 오라고? 벌써 가고 싶긴 하다.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아침에 그렇게 찾았던 가정통신문이 수학여행지 선택하는 거였나 보다. 이것으로 제출해야 할 통신문은 끝난 거겠지? 정신없이 시작된 하루에 영혼이 흔들린 느낌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정신없게, 얼렁뚱땅 지나가는 게 아이 키우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전업주부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내 선택으로 아이가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그저 마음이 편하다. 미안한 마음 따위 저 멀리로 가버렸다.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더 독립적이고 홀로 설 수 있는 습관을 들인다고 믿고 싶다. 


오늘의 일을 계기로 가정통신문 같이 챙겨야 할 게 있으면 잘 챙기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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