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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Oct 30. 2016

08 세월의 무게를 입는다

나는 짧은 외마디를 뱉었다. 거대한 종을 울릴 때처럼 둔중한 타격이 가슴을 쳤다. 

거기, 새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가 30년 된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 완벽하게 똑같은 채로 앉아 계셨다. 

새 옷을 입어도 더 예뻐지지 않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다만 세월의 무게를 입을 뿐인 

존재가 앉아 있었다. 생의 막바지 지점에 이르면, 늙음은 놀라우리만치 강력해져서 조금이라도 

젊어지려는 시도를 손쉽게 무화시킨다. 


                              - 오소희의 <어린 왕자와 길을 걷다> 中에서 -



작가가 시어머니께 옷을 선물하며 느꼈던 일화중 한 대목이다. 

30년 된 드레스를 명절때마다 유니폼처럼 입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무심했던 마음을 반성한다. 

또 십여년 동안 알아채지 못한 무관심에 당장 새로운 옷을 구입해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작년에 작고하신 시어머니와 십 여년을 살면서 계절이 바뀔때마다 옷을 바꿔드렸었다. 

나이 들어 초라해 보이는게 싫어서 였기도 했지만, 나이드신 어머니는 딱히 필요한 게 없으셨다. 

이것도 그냥저냥, 저것도 시큰둥, 먹고 싶은것도 갖고 싶은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다 하셨다. 

세월이 지나도 여자이고 싶은 마음은 늙지 않았는지 핑크빛 계열의 옷은 좋아하는 눈치셨다. 

매번 선물할 일이 있으면 고민없이 현금과 옷 선물을 번갈아 가면서 했었다. 


'어~! 근데 이상하다, 어제 새로 산 옷 맞는데...'

'새로 산 옷이나 입던 옷이나 비슷비슷하네... 재질이 비슷해서 그런가'


나도 작가처럼 느꼈다. 분명 새 옷을 사 드렸는데, 예뻐보이거나 새로 산 티가 나지 않았다. 

어딘가 좀 달라보이고 신선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제 좀 이해된다. 


'엄마' 라는 단어는 '희생'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젊은 엄마는 남편과 자식을 향해 자신의 몫을 양보한다.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내 것보다 자식의 것을 장만하는게 더 행복하고 배부른 일이다. 

그렇게 키운 자식이 엄마 곁을 떠나고 알뜰살뜰 챙겨주는 사람이 생긴다. 

엄마의 역할이 다른 젊은이에게로 옮겨간다.

이젠 자신에게 투자해도 되겠구나 싶은데, 

더 이상 예뻐지지 않는 나이가 되어있다. 


가끔 화려한 할머니를 볼 때가 있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각종 귀금속으로 치장하고 원색의 옷을 입은 화려한 할머니들. 

우아하고 귀품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한껏 오버한 차림새의 할머니다. 

눈꼬리가 가늘어지다가도 오롯이 사람만 놓고 혼자 상상하면 결국 안쓰럽다. 

바쁘고 고단한 젊은날을 보냈을게 자명해 보이는 할머니들. 

고생의 흔적이 얼굴과 표정에서 쉽게 읽힌다. 

젊은 날에 못 해본 것을 늦게라도 누리려는 거겠지. 

원래부터 치장하는 걸 좋아하는 걸수도 있을테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도 그 자신으로 그 세월을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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