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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n 25. 2017

79 좋아하는 치약

2015년의 일화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


좋아하는 치약을 만났다. 좀 지나면 지겨워질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만족하며 썼다. 지금은 시장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는지, 마트에서 보이지 않는다. 파란색 치약 튜브에 톡톡 터지는 신선한 느낌의 치약이었다. 청량감과 개운함이 있어 양치할 때마다 재미있다고 느꼈다. 


좋은 건 공유해야 한다. 남편과 아들에게도 사용을 권해본다. 


“주연아, 이 치약 좀 맛있다”, “아이스크림 중에 슈팅스타 있지? 톡톡 터지는 거. 꼭 그거 같아”


아들에게는 친절하게 칫솔에 짜서 들이밀었다. 그런데 음미하며 사용하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별론 데 엄마. 엄마 왜 치약을 좋아하고 그래?”

“어? 맛없어?, 재미있지 않아?”


그 뒤로 놀려 먹는다. 세상에 그 많은 것 중에 치약을 좋아한다면서 엄마가 이상하단다.

내가 좋아하던 어떤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별로라고 하면 갑자기 시시해진다. 어쩐지 좋아하는 감정이 작아진다. 


“그래?”, “별로야?”, “괜찮은 거 같은데……” 


거꾸로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싫어하던 어떤 것이 가까운 이가 좋아하는 품목이라면 한번 다시 보게 된다.  관심과 호감이 급격히 상승한다.


'뭐지, 나는?' '내 감정은?' '내가 느끼는 건 가짜인가? 진심이 아니었나?' 


내가 좋아하던 어떤 것이 가까운 이의 말 한마디에 싫어질 수도 있는 건가? 혼란스러워졌다. 좋아한다는 착각이었나? 내가 판단하기에 애매모호한 부분을 가까운 이의 동의를 얻어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걸까? 


‘(좋다 or 싫다) 의심 – 동의를 구함 – 확신’ 이런 절차를 밟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닮는가 보다. 서로 다름은 조금씩 내려놓고 상대방 의견 쪽으로 반 걸음씩,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면 절충되고 일치되는 시점이 찾아온다. 싫은 건 함께 싫어하고, 좋은 건 똑같이 좋아하는 지점에 가 닿는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마음이 없을 때, 내 말이 맞는다고 고집을 부리게 될 때, 무조건 내 의견에 군말 없이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시점이 오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 아닐까? 더 이상 서로에게 노력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고 맞춰주려 하지 않는 시점이 콩깍지가 벗겨진 상태라고 본다. 상대를 너무 잘 알게 된, 더 이상 놀랄만한 민 낯이 없는 상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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