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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Jul 08. 2017

83 어떤 엄마의 노력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부슬부슬 비가 온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휴대폰 좀 만지작거리다 영화를 한편 보다 산책을 간다. 

우산을 챙겨야 해서 산책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 집 밖으로 나간다. 


남편과 둘이 한 우산 아래서 비를 피한다. 집에서 출발해 화서시장을 지나 중앙도서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가는 길에 출출한 배를 채우러 식당에 들어간다. 물국수와 비빔국수 두 그릇을 시켜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긴다. 배도 두둑하고 운동 겸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경기도청을 지나 중앙도서관을 거쳐 팔달시장으로 넘어간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한 시장은 오늘도 어김없다. 비가 와서 어깨를 부딪치는 정도로 붐비지 않아 좀 낫다. 한참을 아이쇼핑만 한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충동구매를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끌리는 물건이 없다. 소화가 다 되고,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해 집에 가려고 돌아선다. 벌써 집 나온 지 두 시간이 넘었다.


집 앞 미용실에 들러 남편이 이발을 한다. 함께 따라 들어간 나는 계획에 없던 파마를 하기로 한다. 파마 한 티가 좀 덜나면서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볼륨매직'으로 정한다. 3시간이나 걸린다는 게 흠이지만 머리를 맡기기로 한다. 원장 혼자 하는 미용실인데, 항상 사람이 많다. 오늘은 운 좋게 안기다려도 된다. 파마를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머리에 뭔가를 바르더니 부엌에서나 볼 수 있는 쿠킹랩을 머리에 씌워준다. 이런 상태로 50분쯤 대기해야 한단다. 책을 한 권 들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낭비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대기하는 중에 옆에 손님이 시선을 잡아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인데, 휴대폰을 보면서 이따금씩 소리를 지른다. 조금 장애가 있는 아이로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미용실 주인도 아닌데, 다른 손님에게 차나 커피를 먹겠냐고 물어보고, 초면에 말을 건다. 그날 처음 본 손님들끼리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몇 마디 대화를 하던 손님들은 평범하지 않은 아이의 행동을 보며 좋은 점을 보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의 칭찬할 거리를 찾으려는 듯 보였다. 그 엄마에게 받은 친절을 아들을 칭찬하는 것으로 갚고 싶은 듯했다. 


모르는 아이가 울고 떼쓸 때와 아는 아이가 울며 떼쓸 때의 상황은 피부로 다르게 와 닿는다. 모르는 아이의 것은 짜증 나고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아는 사람의 아이는 달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씩씩해지고 하기 싫은 일도 용기 내서 한다. 원래 싹싹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엄마일 수도 있지만, 자기 아들이 공공장소(!)에서 주목받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행여 아들이 낯선 어른에게서 싫은 소리나 대접을 받을까 싶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좋게 하는 듯 보였다. 자신을 희생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우리 아이 좀 예쁘게 봐주세요' '착한 아이예요, 나쁜 아이 아니에요. 잘 좀 봐주세요' 하는 말을 하는 듯했다.


머리에는 랩을 뒤집어쓰고 한쪽 구석에서 귀로 상황을 들으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그럭저럭 보낸다. 상상과 몽상은 때로 졸음을 유발한다. 중간에 꾸벅꾸벅 졸다 깨다 한다. 어차피 나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해주니 고개만 움직이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 원장 선생님께는 대화 상대를 해 드려야 하지만,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해 파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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