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에서 역량으로, 우라가 넘지 못하는 벽
(부제: 법이 만드는 안전함의 한계)
왜 우리는 연공이 아닌, 실력과 역량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지 못할까? 이 질문을 꽤 오랜 시간 해왔습니다. 평가, 피드백, 리더의 발탁, 승진 그리고 채용과 보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중심이 바로 역량에 기반하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역량의 정의는 '고성과자의 행동'입니다. 고성과자라는 말은 '조직의 목표에 크게 기여하는 직원'이라는 의미이죠. 그렇다면 역량이 낮다는 말은 조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역량의 기준은 경력과 연봉 그리고 직책이 될 수 밖에는 없죠.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역량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인재를 관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유교 문화와 같은 특징도 있지만, 연공 조직과 역량 조직의 특징으로 구분해서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1. 연공 중심의 조직
한국의 많은 조직은 여전히 연공 중심입니다. 역량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오래 일하면 자연스럽게 연봉이 오르고, 승진이 따라옵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든 일보다 편하고 쉬운 일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연봉은 오릅니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해고 제한이 이 ‘안전망’을 만들어주죠.
이 구조에는 분명 강점이 있습니다.
- 고용 안정으로 인한 심리적 편안함
- 장기근속자를 통한 조직 경험·암묵지 유지
-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적인 운영 가능
하지만 약점도 분명합니다.
- 역량이 부족해도 보상이 유지됩니다.
- 변화와 혁신 속도가 느립니다.
- 고연차일수록 도전보다 안주를 택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특히 변화 속도가 빨라진 지금, 이 약점은 더 두드러집니다.
2. 역량 중심의 조직
미국 기업은 구조가 다릅니다. 역량이 부족하면 평가와 보상이 낮아지고, 개선되지 않으면 해고됩니다.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반대로 뛰어난 역량은 연차와 무관하게 높은 보상과 빠른 승진으로 이어집니다.
강점은 명확합니다.
- 우수 인재의 빠른 성장
- 성과와 보상의 명확한 연결
- 변화와 혁신 촉진
하지만 약점도 있습니다.
-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 단기성과 중심의 문화
-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문화 불안정 가능성
3. 성장이 아닌, 생존의 시간
예전엔 성장을 위해 역량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기업도 과거 방식으로는 성과를 만들기 어렵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대입니다. 기업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데, 구성원의 생존을 장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역량이 곧 실력과 명함이 되는 시대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역량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4. 역량 중심으로 가기 위한 조건
1) 제도적 기반
- 역량 부족 시 낮은 평가·보상, 지속적 저성과 시 해고 가능
- 뛰어난 역량에는 즉각 보상·승진
2) 법적 환경
- 해고와 연봉 조정이 일부 가능해야 함
- ‘미국처럼’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한을 회사와 리더가 갖는 수준
- 실제로 조직을 해치는 ‘퇴출 1순위’ 인원에 대한 합리적 조치 필요
3) 문화와 제도의 변화
- 안주보다 성장을 선택하는 분위기
- 역량 개발이 일상이 되는 학습 문화
- 명확한 성과·역량 지표 기반 평가
- 투명하고 정기적인 피드백
5. 결론
우리가 연공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못 넘어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안전망이 주는 안주’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안전망이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안전 속에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안전 속에서 더 높은 역량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