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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ㄴㅈㅇ May 07. 2017

문명은 왜 다른 속도로 발전했을까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1만여 년의 인류사에서 대륙 간 문명이 불균등하게 발달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는 ‘옆집 철수와 나는 같은 날에 태어났는데 왜 철수는 대기업 사장님이 되고 나는 통닭집 사장님이 될까’라는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농경생활과 청동기, 철기를 거쳐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초기 출발 단계는 엇비슷했으나 인류의 문명은 어디서부터 차이가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왜 오늘날 우리는 동양인,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우세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왜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는 사회에 살게 된 것일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관점과 한 권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백인은 원래 유전적으로 우월한 종이야 (feat. 우생학)


  19c 다윈Darwin의 『종의 기원』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핵폭탄 같은 주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철떡 같이 믿고 있었던 창조론을 완전히 뒤엎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진화의 결과물이자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적자생존’ 이론은 기독교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다윈의 사촌인 골턴Galton은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을 골자로 하는 ‘우생학’을 창시합니다. 골턴은 자신의 저서 『우월한 유전자』에서 우량 인자들 간의 교배로 품종을 개량할 수 있듯이, 인간도 우성으로 개량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열등하거나 가난하거나 장애자와 같은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배제하였으며, 심지어 우수한 남성과 돈 많은 여성을 계속해서 결혼시키면(?)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골턴의 우생학은 대중적으로 꽤나 인기가 있어 대륙을 건너 1920년대 미국에서 우생학회가 탄생했습니다. 미국 정책의 헤게모니를 쥐었던 우생학회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부자와 권력자들은 보호받아야 될 존재들이며, 아시아, 아프리카의 열등한 민족은 이민조차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정신병, 발달 장애, 간질 환자들에 대해서는 유전자를 후대로 남기지 못하게 강제 불임시술까지 제안했고, 실제로 미국의 몇몇 주들은 불임법을 도입하게 됩니다. 후에 미국의 불임법을 자국에 가져온 사람이 있었으니, 나치 정권의 히틀러였습니다. 나치 정권은 우생학의 이론에 근거해 순수 독일 혈통을 보존하는 사업을 벌였고, 유대인과 유색인종, 집시 등을 대량학살하는데 정당한 ‘과학적 근거’로 우생학을 제시하였습니다.

We will create The Perfect Race - Adolf Hitler


  이처럼 진화론의 우생학은 사상 최악의 홀로코스트와 더불어 인종차별정책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네오나치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된 이론적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막장까지 치달은 우생학은 인류의 문명 발달 차이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인종적인 견해를 가지고 설명했는데, 서양이 적자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인종들(황인흑인)보다 환경변화에 더 잘 적응했던 것이고결국 이는 다른 인종들보다 백인이 우월하다는 논리적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White is better than Black and Yellow'.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라고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이 받아들여진 건 불과 몇 십 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미국 우량아 선발 대회 사진. 당시 미국은 어느 백인 아기가 최고의 유전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ㄴㄴ 그것은 환경적(지리적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 (feat. 재레드 아이아몬드)


 『총, 균, 쇠』는 ‘문명 간 불균형을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조류의 진화를 연구하던 저자는 기본적으로 진화론에 발을 딛고 있는 학자지만, 대륙 간 문명 발달의 차이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주장에 문제의식을 가집니다. 얄리를 포함하여 그가 만난 뉴기니 주민들은 비록 문명 발전은 늦었지만 결코 열등한 인종으로 치부할 수 없는 훌륭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인류사를 서술합니다. 책의 내용에 의하면 인류가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옮겨가면서부터 문명 발달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류는 야생식물을 작물화하고 야생동물은 가축화하는 식량생산 활동을 통해 잉여생산물을 축적했고, 이는 곧 유행병, 문자, 사회발전 등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식량생산은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역별, 시기별로 달랐고, 특정 지역 사람들이 작물화, 가축화한 것을 다른 지역 사람들은 하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아가 특히 제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식량, 가축의 전파 방향인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어느 한 곳에서 재배된 작물 및 가축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가는 점에 있어서 다른 대륙보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산맥이나 분단되어 있는 곳이 없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동서축 방향을 중심으로 하여 식량과 가축뿐만 아니라 기술 및 발명품의 교류에도 지리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식량 및 가축의 전파가 왜 다른 대륙에는 활발히 일어나지 않았는가요. 저자는 이 또한 환경적 요인이라 주장합니다. 대부분 사막과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아프리카에서는 작물이나 가축이 제대로 전파되기 힘들었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다양한 기후가 존재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동일한 작물이나 가축이 전파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라시아 인이 타 대륙의 사람들에 비해 문명의 발달이 빨랐던 것은 우생학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우연히도 환경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끊임없는 경쟁으로 더 큰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총평 인류사에 대한 실증적 탐구 보고서


  흔히 인문학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그래서 과학과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류사와 문명에 대하여 저자는 방대한 양의 자료조사와 실증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의 특성상 한 가지 이론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이 발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인류사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 시도에서 그가 이해하는 역사란 무엇인지, 그 내용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인간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서술한 것에 더해 『총, 균, 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같은 과학이지만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우생학을 밀어내고 조금 더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를 설명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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