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이 정도는 가성비가 괜찮다, 라는 선이 있지만, 그러한 선도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자의 선이 모두에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필자의 취미에 대해 "돈 아깝다"거나, "사치가 심하다", 심지어는 "아무거나 쳐 먹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필자가 마음속으로 취미를 합리화하는 로직을 항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글을 남긴다.
1. 파인 다이닝 방문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취미생활이다.
세상의 다양한 취미생활을 평가할 때, 필자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성장성"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전거를 주말마다 타면 몸이 건강해 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취미이므로 권장할 만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LOL과 같은 반복적인 형태의 게임을 즐기는 것은 눈과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권장할 수 없는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복적인 게임 외에 스토리가 있는 게임의 경우, 영화와 더불어 시각, 청각, 그리고 이야기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현대의 종합 예술이라 생각하므로 나름 성장성이 있는 취미라고 판단하고 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파인 다이닝 방문은 성장성이 있는 취미생활이다.
우선 파인 다이닝을 발굴해서 찾아다니면 가 보지 않은 골목이나 동네를 방문하게 될 때가 많은데, 이는 본인이나 연인에게 꽤 괜찮은 이야깃거리를 선사하고 견문을 넓혀준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필요한 적정 수준의 교양 상식을 쌓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음식도 좀 진지하게 먹다 보면 음식 안에 관련된 스토리들이 많다. 예를 들어서 홍콩의 파인 다이닝에서 검은 젓가락(본인용)과 흰 젓가락(공유용)을 같이 주는 것도, 중국 남부의 습한 날씨에 따른 식중독에 대비한 역사가 묻어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해당 문화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이런 잡지식들이 쌓이고 쌓여 교양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항상 어느 쪽이 공유용이고 어느 쪽이 내 것인지 헷갈리지만...
이렇듯 파인 다이닝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요리법과 재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경험이 쌓이면 재료와 맛을 잘 분간하게 되는 것뿐 아니라, 파인 다이닝을 방문하느라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까지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개인을 성장시키는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상당히 장려되는 취미라고 할 수 있다.
2. 음식점을 가기 위해 여행을 기획해도 좋은 곳들도 있다.
이제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미슐랭 3 스타의 의미는 "이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기획해도 좋은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여행 중 좋은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여행의 품격이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세 번째 북해도 방문 때 들렀던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몰리에르는 여행 전체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쪽으로 강화시켜 주었다. 그 이전까지의 북해도는 양고기나 카이센동, 혹은 삿포로 비어 정도의 친근한 지방도시 이미지가 강했다면, 1인분에 4만 원가량의 런치를 먹고 나니 북해도 전반의 이미지가 굉장히 세련된 느낌으로 기억되는 효과가 있었다.
몰리에르를 접하고 나니, 삿포로는 더 이상 촌스러운 시골 도시가 아니게 되었다.
또한, 아직 가 보지 못한 곳 중에서도, 특정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반드시 해당 도시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레스토랑이 있다. 시카고에 위치한 Alinea가 그러한데, 시카고는 이미 꽤 여러 번 방문해 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Alinea를 알고 난 뒤에는 다시 방문해 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Chef's table에서 본 시카고의 Alinea
평소에 살고 있는 도시에서 파인 다이닝을 방문하는 것 역시 권장할 만한 취미생활이지만, 여행과 접목시켜서 파인 다이닝을 방문하는 것 역시 인생에 남는 추억을 선사하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3. 어떤 파인 다이닝은 종합 예술을 선사한다.
모든 파인 다이닝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몇몇 파인 다이닝은, 시각, 미각, 그리고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종합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꼭 1인당 30만 원짜리 엄청난 고가의 레스토랑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1인당 4만 원짜리 런치에서도 충분히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시 다이닝이 좋은 예이다.
런치 4-5만 원 하는 강남의 미들급 스시야에서 2시간 정도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는 스시를 눈으로 감상하고, 맛으로 느끼고, 또 셰프님께 생선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2시간짜리 공연을 보는 것과 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 종합예술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꽤 보장된 수준의 기쁨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낮은 종합 예술이다. 아마 김동률 공연을 보고 기뻐할 사람보다 김동률 공연과 같은 가격의 스시 오마카세를 먹고 기뻐할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론은, 파인 다이닝 방문은 개인을 성장시켜주는 취미생활이자, 여행의 재미를 격상시켜주는 소재이고,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필자가 아닌, 좀 더 멋진 사람이 했으면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필자의 몸태를 보면
"돼지가 또 먹고 싶다는 말을 길게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좀 안타깝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우리나라에도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수준 높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융성하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