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키보드지만
작은 이야기인 소설보다는 붓을 따른다는 수필이 더 낭만적이다.
소설이 "사실 다 구라다"를 기반으로 더 높은 자유도를 갖지만 수필은 "내 얘기다"를 기반으로 보다 높은 신뢰도와 담백함을 가질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너무나 좋아해서 문체도 여러 번 흉내 내어 보았지만 평양냉면 같은 담백함의 정수에는 아직 조금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지난번에 A/B Testing에 대해서 글을 쓰고 난 뒤에, 회사에서 BI Tool을 교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그에 대해서 써보려 하였지만, 그에 앞서서 최근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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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났다. VAR은 언제 적용하고 언제 적용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또 다른 문제를 낳았지만 비디오 판독을 축구에 처음 도입했다는 사실로 고무적이었다. 그렇지만 VAR 도입이 새로운 축구의 시대를 열었듯, 언제나의 월드컵처럼 기존의 스타들이 지고 새로운 스타들이 떠올랐다.
2006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은 기존의 에이스 피구를 떠나보내고 신성 호날두를 맞이하였고, 필자는 대학교 신입생의 여름방학으로 독일 시간의 월드컵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였다.
2018년 월드컵은 필자가 30대가 되어 맞이하는 첫 월드컵이었다. 이 월드컵을 관심 있게 바라본 축구 팬이라면 모두가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 역시, 98 월드컵 이후로(= 축구에 관심이 있어서 월드컵을 본 이후로)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을 라이브로 시청하지 않았다. 자정에 시작한 경기를 보지 않은 것은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수정이가 몸이 안 좋아서 간호를 해야 했고, 내가 응원하는 크로아티아가 질 것 같았고, 두시까지 보고 자면 내일 피곤할 것 같다는 것도 있었다.
크로아티아가 질 것 같다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내가 30대여서 생겨난 이유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차에 올라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새벽에 축구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일은 여생에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30대로 겪은 첫 월드컵인 2018년 월드컵은, 호날두와 메시의 시대가 저물음과 동시에, 나의 시대 역시 한 풀 저물었음이 느껴져서, 쓸쓸한 느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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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먼디가 AOMG 대표에서 물러났다.
최근에 발매한 roommate only라는 정규앨범도 엄청나게 쓸쓸했는데, 그런 쓸쓸함에 대해 직선적인 설명을 전해준 me no jay park이라는 노래를 덧붙이며 사임했다.
그간 대표로서 받은 압박감, 그리고 그 압박감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박재범과 비교되는 행보를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더욱 커지는 부담감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힙합 음악은 여러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솔직함인 것 같다.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가사들이, 미사여구가 동원된 일반 가요와는 차이점인 것 같고, 이러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가장 문제인 것은 나 자신에게 받아내기 힘든 오케이 컷"
이라는 말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나도 브런치 글이 예전 20대 초중반 싸이월드 글에 비해서 왜 이렇게 잘 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위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이는 들었고, 세상에서 많은 글을 읽었고 다양한 개똥철학들을 접해서, 내 스스로 내 생각이나 글이 original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뭐 다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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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다녀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트렌디함과 경험의 다양성이라고 할 것이다.
트렌디함이란 인더스트리가 트렌디하고, 조직의 구성과 운영방식 등이 트렌디함을 말한다. 아마 이런 부분이 ㅈ소기업과 스타트업을 구분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경험의 다양성이란 다른 말로는 인력난 덕분에 오는 것인데,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분화된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제너럴한 일을 적당히 잘 처리할 수 있는 범용성도 중요하다.
내가 범용성이 좋단 말이 아니라, 원하든 원치 않든 범용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우리 회사는 요즘 인력이 많이 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뽑고, 새로운 인맥이 형성되고, 나와 함께 입사해서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가고, 내가 웃고 떠들던 자리에 어느덧 젊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게 되는,
대기업에서 20년 정도 근속하며 느낄만한 것들을 2년 만에 컴팩트하게 느끼고 있다. 체험판 느낌으로다가...
많은 생각이 들지만, 역시 핵심은 내 삶이 삶대로 존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라는 것.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은 일과 별개의 자아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도 위상이란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 발언권과 존재감이 필요하듯, 가정에서도 그런 것이 필요하고, 가정에서의 존재감과 위상도 회사에서의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노력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 같다.
뭐, 아직 퇴근해서 갈 곳이 없어서 공원에서 비둘기 밥 주는 신세인 정도는 아니다.
오늘의 수필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