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ecyclabl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a Mar 17. 2021

치열하게 고민하기

치열하게 사신 분

최근에 문득 "치열하게 고민하기"라는 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지만, 필자가 대학생이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아직 "치열하게 고민하기"라는 말이 살아있던 세상이었다.


그 당시 만나던 선배들이든, 어디 학회 모임이든, 아님 회사에 다니는 아저씨들을 만날 때, 젊을 때 치열하게 고민해봐라, 라는 조언이 술자리 3차 정도에서 자주 나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에 대해서 꽤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니 이 표현 역시 IMF 이전 경제 성장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행복한 유산이 아닌가 싶다.


보통 치열한 고민이란 것은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에 국한된다.

앞으로 뭐로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 치열하게 고민해봐라,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니면서 서울에 사는 삶을 어떻게 구현할 건지 치열하게 고민해봐라,

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보통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봐라,

네가 삶에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봐라,

같이 철학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 "치열하게 고민하기" 표현이 등장한다.


80년대 학번들한테 대학생활은 낭만이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아니하듯,

치열하게 고민하기란 표현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제정신인 세상일까?


80년대 학번 황금세대들의 훌륭한 유산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기"는 이제 사라지는 것이 맞는 유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직까지 술을 마시고 젊은이들에게 치열하게 고민하라고 말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치열하게 고민하기가 아직 한국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는 표현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보신 후에 말씀해 보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핑크 글로우(Pinkglow) 시식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