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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a Oct 04. 2018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남는 명작은 존재한다.


나에게 있어서 명작인 영화라면 이터널 선샤인, 초속 5cm, 트루먼 쇼, 인셉션 등의 영화들이 주저하지 않고 떠오르고, 여전히 자신 있게 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위 작품들을 보지 않은 사람은 관계없지만, 보고 나서도 크게 감흥이 없다는 사람과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드 일드 미드 전부 포함해서 크게 fan이라고는 할 수 없을뿐더러, 남들이 그렇게 쉽게 된다는 '드라마 중독'이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다. 특히나 한국 드라마는 싫어하는 쪽에 가까워서, 2013년 여름에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 싫어할 리 없다'라는 드라마 연애시대를 보고 역시나 루즈함과 고리타분함을 느꼈던 것이 마지막 한드의 기억인 것 같다.


영화와 한드는 한결같이 좋거나 한결같이 싫은 쪽이지만, 왕년엔 꽤 빠졌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일드이다. 고 2 때 제 2 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다음 카페 일본TV(여기서 '일'과 '본'은 21세기 초에 유행하던 동그라미에 쌓인 글씨였다)에서 드라마 고쿠센을 보기 시작한 것이 일드와의 첫 추억이다.


양쿠미(고쿠센의 주인공)의 억지스러운 발랄함에 지쳐갈 때쯤, 눈에 들어온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의 외치다"이다. 꽤나 그럴싸한 제목이라서 고쿠센과는 달리 꽤 진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클릭해서 1화를 봤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 당시에 나의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 오늘 오랜만에 다시 1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아야세 하루카이다. (혹시 아야세 하루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 Our little sisters(2015)와 Tonight, at the movies(2018)을 추천한다. 특히 Our little sisters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약간 여담이지만 1화를 다시 시청하면서 "저 얼굴에 고딩을 연기하다니 뻔뻔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85년생인 아야세 하루카가 2001년에 촬영한 것이니 실제로 고1이던 시절이다. 약간 노안이셨던 것이 현재 미모를 유지하시는 비결인가...

극중 여주가 남주에게 반했다고 고백한 우산을 씌워준 순간

암튼, 이 드라마 1화에 등장하는 워크맨(!!) 고백 씬은 상당히 충격적인 로맨스였고 나의 이후의 dating scene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이후로 나온 영화도 챙겨봤으나 '드라마가 낫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드라마를 좋아했고, 지금에 와서까지 명작이라고 말할 만한 작품은 아닌 것도 같지만 여전히 추억 보정이 들어가서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2006년 싸이월드에 꿍시렁을 늘어놓던 시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지하철을 타고 등굣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각각 사람마다 본인의 라이프스토리가 있고, 본인의 러브스토리가 있고, 또한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것에 관한 글이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은 네트워크로 얽혀 있다 하더라도 본인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영향을 미치는 반경이 다를 뿐, 각자가 각자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간다,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화 버전은 드라마 버전의 감동을 넘어서지 못했다

요즘 드는 생각으로는 이 생각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본인의 삶의 중심이 본인이 되지 않는 순간이 인간에게 오는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는 "네가 세상에 태어난 후 내가 세상에 없었던 적은 1초도 없었어"라는 로맨틱한 말을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내가 죽은 후에 이어질 그 사람의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그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너는 너의 세상을 계속 살아줘" 정도의 말만 남긴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말로만으론 안된다. 너의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도와야 하기 마련이다. 부부사이도 그렇고 부모자식간이면 더욱 그렇다.


내가 왜 돈을 벌고 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냥 본능이라는 말 외에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혀.) 아이와 가정이 성장함에 따라서 내 삶의 중심이 나를 벗어나게 되면서, 점차 주변인으로 밀려남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는 것 같다. 내 삶이 정말 내가 중심이고 나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산다면, 돈을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는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열심히 주체적으로 개성 있게 살아보려 했으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내가 여전히 나인 채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늙어가고 있다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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