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년 3월에 작성된 것을 2018년에 다시 업로드한 것입니다)
버벌진트가 2015년쯤에 발표한 go hard라는 앨범에 현자타임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제목을 보고 매우 기대했지만 노래는 매우 실망이었다.
버벌진트가 뜨기 전인 2009년 정도였다면, 똑같은 제목의 훨씬 좋은 노래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자타임의 raw한 모습은 그 노래처럼 멀쩡한 모습이 아니다.
브런치를 해야지 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아이디를 오픈하고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쓴다.
data scientist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브런치를 해 보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
또 왕년에 싸이월드에 글 좀 쓰곤 했으니 더욱더 나와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좀 창피했다.
나이가 들고나니(라고 해봐야 86년생) 어렸을 때처럼 예술적 영감이 자주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꽤나 상큼하고 신선한 의견들이 떠오르곤 했다.
지금 나의 상태처럼,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나이가 들수록 진부해지고 보잘것 없어지는 이유를 나는 안다.
통계학 공부를 대단히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통계학이 주는 철학적 메시지를 좋아했다.
통계는 수학이지만, 수학이 본질적으로 그러하기에, 역시 철학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제로를 중심으로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태어난다.
위의 그림같이?
보잘것없는 평균이지만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포텐이 무궁무진한 상태.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발전을 거듭하고, 사회는 네거티브의 상태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 가면서 변해간다.
0 밑으로 가는 것을 억지로 막아가면서 어떻게든 긍정의 부분에 스스로를 몰아넣으려 애쓴다.
처음의 상태와 똑같이 횡으로 긍정적인 쪽으로 이동한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평균을 긍정적으로 옮기는 것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고, 그 비용이란 "무난함"의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실 직업이 data scientist라서, 왠지 어떻게든 결부시켜 보려고 헛소리를 길게 했다.
위에 쓴 글은 억지니까 잊어주시길. 그냥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이다.
저런 뻘소리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싫은걸 참아낼 수 있게 된 만큼,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가을방학의 가삿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더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가끔씩 터져 나오는 개뽀대의 모습은 실종되는 것이다.
당연한 인생의 trade-off.
오늘의 나는 너무나도 한심한 일을 저질렀기에, 집에 오는 길에 이어폰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인디 음악에 온전히 공감하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심함 뒤에 찾아오는 보상이 기뻤다.
한심함을 저지르지 않고 내 글의 퀄리티를 유지할 자신이 없지만, 당장의 기쁜 맘에 힘입어 글을 개시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