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데스틴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운전 피로 덕분인지 아주 꿀같은 잠을 잤다. 오늘은 데스틴을 본격적으로 투어해 보는 날이다. 가장 플로리다스러운 바닷가 뷰를 구경하고 싶어 숙소 근처 있는 Mirmar beach로 향했다. 전날까지 이틀 연속으로 운전을 하느라 너무 못 걸어 다녀서, 차를 잠시 두고 도보투어를 택했다. 천천히 걸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보았다.
1. Mirmar beach
데스틴은 가로로 길게 해변이 형성되어 있는 지형이다. 덕분에 해변가도 매우 길고 해수욕장도 많은데, 그중에서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면서 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르마르 비치를 가장 먼저 찾아보았다. 백사장이라는 글자 그대로 밀가루처럼 곱고 새하얀 모래사장과 그라데이션의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시그니처였다. 한겨울에 가서 수영을 못해 아쉬웠지만, 겨울 바다의 정취도 아름다웠다.
그림 같은 바닷가 풍경이다. 물을 좋아해 살면서 많은 바다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새하얀 모래를 가진 백사장은 처음 봤다. 새하얀 모래와 대비되어 에메랄드 색 바닷물이 더욱 쨍하게 들어왔다. 이 풍경만으로도 10시간 운전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백사장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손에 한 움큼 모래를 쥐면 밀가루에 가까운 질감의 아주 고운 모래들이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남는 것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모래시계를 만들어야 한다면 데스틴의 모래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곱고 촉감이 묘한 모래였다. 이곳에서는 Silver Sand라고들 표현을 하고 있었다. 하얗고 고와서 개인적으로는 Flour Sand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운동화에 양말까지 신었지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맨발로 밟아보고 싶은 해변이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밀가루 같은 백사장을 원 없이 밟아보았다.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가 스르르 사라지고 마는 모래의 촉감이 좋았다. 맨발로 백사장을 밟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원 없이 걸어보았다.
데스틴의 미르마르 비치는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플로리다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러 나왔다가 해변의 아름다움에 반해 오후에 한 번 더 구경을 오기로 하였다. 늦잠을 자고 와 조식을 못 먹었던 터라 당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일단은 배꼽시계가 요동을 쳐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하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브런치 가게로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2. 2 Birds Coffee & Cafe
여행에 온 만큼 정말 '맛있는' 커피와 브런치를 먹고 싶다면 강력 추천하는 브런치 집이다. 그저 그런 아메리칸 프랜차이즈들이 조금 질렸다면, 혹은 기름진 음식이 물렸다면 꼭 한번 들러봐도 좋겠다. 맛있는 빵과 커피에 기분이 한층 좋아지는 데스틴의 브런치 맛집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맛있는 브런치를 찾아 도착한 이곳은 데스틴의 한 골프장 상가에 위치해있는 브런치 카페다.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제일 저렴한 커피만 먹은 지 오래돼서, 여운이 짙은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리뷰를 꼼꼼히 보며 엄선한 곳이 바로 이 카페였다.
서버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이 커피를 맛보고 원두를 사러도 많이 온다며 커피 맛에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드립 커피와 카푸치노를 시켜봤는데, 과연 풍미가 정말 훌륭했다. 자부심을 느낄만했다. 연어 토스트와 프렌치토스트도 상큼하고 맛있었다. 그간 로드트립으로 이틀을 달려오면서 미국식 프랜차이즈에 절여져있던 기름진 입안을 깔끔하고 상큼하게 씻어낸 한 끼였다.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우리 테이블을 서빙해주었던 서버도 친절하고 재미있었다. 플로리다에 처음 와서 무척 설렌다고 했더니 서버가 더 신이 나서는 종이와 펜을 가져와 플로리다의 맛집을 다섯 개나 줄줄이 적어주고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각각 맛집의 특징을 브리핑해 주었다. 직원의 인싸력에 우리 부부는 리액션이 고장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가장 강력하게 추천해 준다는 메뉴가 치즈 버거여서 웃음이 나왔다. 치즈버거는 전미 어디를 가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말이다. 플로리다의 신선한 로컬 해산물들을 뒤로 한 채, 치즈버거를 넘버원으로 꼽는 그 열정을 어찌해야 할지, 조금 난감했다. 모쪼록 맛있고 유쾌한 브런치였다.
3. Handerson Beach State Park
오전에 미르마르 비치에 갔다가 데스틴의 바다에 반해 또 다른 스팟의 바다를 찾아보았다. 돗자리나 캠핑체어를 가져와서 밀가루같이 고운 백사장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정말 좋다. 입장료는 차 한 대마다 $6이며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오전에도 해변에 갔었지만, 바닷가가 너무 아름다워 한 번 보고 지나가기에 아쉬움이 컸다. 바닷가에서 아예 느긋한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바닥에 깔 비치타월을 챙겨서, 또 다른 해변이 있는 핸더슨 비치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오전의 미르마르 비치가 쨍-한 코발트 색감의 바다였다면, 오후의 구름 낀 핸더슨 비치는 파스텔 톤이었다. 몇 시간 차로 분위기와 색감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자연은 아무리 봐도 경이롭다.
비치타월을 깔고 앉아 한가롭게 경치를 구경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비수기라 사람도 많지 않고, 차분하니 정취를 즐기기에 좋았다. 사진은 비록 해변의 노숙자 같지만, 이래 봬도 운치를 즐기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시길 당부드리는 바다.
4. Slick Lips Seafood & Oyster House
플로리다에 오면 저렴하고 신선한 로컬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꼭 먹어보라고 한다. 생굴과 각종 생선을 이용한 요리를 맛있게 해주는 데스틴 해산물 맛집이다.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 맛은 보증한다. 음식점이 위치한 The village of Baytowne Wharf를 구경하는 것도 묘미다.
플로리다 하면 또 해산물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해산물을 굉장히 좋아해서 다 먹어보고 싶은 나머지 메뉴를 추리는 게 일이었다. 생굴 한 판과 Blackened 참치요리, 그리고 피시 타코를 주문했다. 생굴에 레몬즙을 두 방울 짜넣은 다음, 생강을 올리고 칵테일소스를 발라 한입에 먹으면 극락이다. 신선하면서도 비릿한 굴의 내음이 감미롭다. 생굴에 초장을 찍어 먹는 한국식도 맛있는데, 생강과 칵테일소스로 먹는 미국식도 만만치 않다. 다양하게 먹는 방법을 체험해 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피시 타코와 참치요리는 처음 먹어본 맛이라 재밌었다. 특히 참치 요리가 맛있었는데, 이 가게에 간다면 이 Blackened Tuna를 강력 추천한다. 거대한 참치 살로 만든 스테이크 같은 요리였는데, 두툼-한 참치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사진으로는 작아 보이나, 실물이 훨씬 크다. 미국 음식은 정말이지 양으로 사람을 섭섭하게 하는 법이 없다. 오늘도 자비 없이 위를 늘리고 나왔다.
미국에 와서 처음 로드트립을 떠나오면서 장시간 운전이 무섭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잘 도착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에서 나는 진미를 맛보니 힘들었던 것들이 싹 녹아내리는 듯하다. 새로운 곳에서 접하는 풍경, 맛, 사람들이 감각 하나하나에 영감과 자극으로 스며들어온다. 여행의 이유다. 다음 날은 또 어떤 이유들을 찾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