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게는 11월 15일부터 시작해서 가장 흔하게는 12월 1일까지, 조금 늦게는 12월 15일까지 서류 제출을 마감하고 나면 진이 쭉 빠진다. 보통 열몇 군데씩 지원하기 때문에 서류 제출에 품이(그리고 돈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서류 제출을 마감하고 며칠 간은 자축하며 쉬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12월 중순에서 말이 되면 약간 미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바로, 인터뷰 때문이다.
상담 심리와 임상 심리 전공은 12월 중순부터 비공식 사전 인터뷰 초청 메일이 돌기 시작한다. 이 역시 학교마다, 랩마다 차이가 큰데 보편적으로 보자면, 12월에 비공식 사전 인터뷰를 통해 지원자를 일차로 거르고, 소수의 지원자를 1월 말 경에 학과에서 공식적으로 실시하는 인터뷰에 초대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공식 사전 인터뷰와 공식 인터뷰를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1. 비공식 사전 인터뷰(Preliminary Interview)
어떤 프로그램은 비공식 인터뷰를 3차까지 치르고 살아남아야 공식 인터뷰에 초청하는 곳도 있고, 1번만 보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는 등 천차만별이다. Grad Cafe에 수시로 인터뷰 오퍼 실황이 올라오며 작년도 타임라인도 파악할 수 있으니 꼭 살펴보길 추천한다.
12월 이 시기에 마음이 굉장히 초조하고 힘들겠지만, 모든 지원자가 다 마찬가지니 마음을 잘 다독여주면서 언제 올지 모를 사전 인터뷰에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비공식 사전 인터뷰는 이메일이 오면 거진 바로 며칠 안에 줌 미팅을 하기 때문에, 이메일을 받고 그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하면 늦은 감이 있다.
필자가 첫해 인터뷰를 말아먹은 이유도 이것이었다. 여러 학교에 지원해서 어느 학교 인터뷰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다가, 초조함에 차분하게 준비를 못 해서 느닷없이 주어진 인터뷰 기회를 준비 부족으로 말아먹은 것이다. 때문에, 상담심리 전공이라면, 서류 제출을 마치고고 힘들겠지만 하루 이틀만 쉬고 바로 인터뷰 준비에 착수하는 편이 유익하다.
사전 인터뷰는 대부분 지원하는 교수님과 1:1 미팅으로 진행되며 시간은 짧은 편이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이며, 기본적인 것을 물어본다. 핵심은 아무래도 연구 핏일 텐데, 관심 있는 연구 주제와 방법론이 메인이다. 이때 지원하는 교수님의 랩에서 출판한 논문, 주로 사용하는 이론과 방법론을 키워드로 언급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된다. 랩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연구의 방향이 교수님의 청사진과 일치하는지 등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원자도 교수님과 랩에 대해서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어떤 랩에서는 랩 치프-그러니까 랩에서 가장 고학년 박사과정생-가 사전 인터뷰를 보기도 한다.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것이, 재학생들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다면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교수님 스타일, 인건비나 랩 재정 구조,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질문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대부분 친절하고 솔직하게 잘 이야기해 주는 편이라 사전 인터뷰에서 질문을 당하지만(?) 말고 '돔황챠'의 시그널이 있는지 잘 살펴보면 좋겠다.
2. 공식 학과 인터뷰
사전 인터뷰를 통과했다면, 학과에서 여는 공식 인터뷰 오퍼를 받게 될 것이다. 이 공식 인터뷰의 형식도 프로그램마다 다채롭고 형식도 정말 다양한데, 상담 심리/임상 심리 전공은 이 과정에서 지원자 검증에 정말 공을 많이 들이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프로그램의 경우도 거의 12시간에 달하는 인터뷰를 하루 종일 진행해서 참 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타 학교의 경우 1박 2일로 교수님이나 대학원생의 집에 지원자를 재워가며 살피는 프로그램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일에 집에 보내주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공식 인터뷰 일주일 정도 전, Interview Itinerary라는 타임 테이블을 이메일로 받았다. 이 시간표 순서대로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 보려 한다.
첫 세션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Breakfast & Program Welcome 시간에는 모든 지원자와 교수진이 한자리에 모여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수두룩한 지원자들 얼굴을 보는데 괜스레 기가 죽는 것만 같고 엄청 긴장되고 떨리는 시간이었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인터뷰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세션을 마쳤다. 미국에서는 자기소개에 Fun Fact는 어딜 가나 시키는 것 같아서 몇 개쯤 레퍼토리를 준비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세션부터 본격적인 인터뷰다. Teaching and Professional Identity Interview에서는 박사 과정에서 주어지는 역할 중 하나인 학부생 수업 티칭에 관한 역량을 검증한다. 5분짜리 짧은 티칭 시연을 사전에 준비하도록 한다. 준비한 PPT를 띄우고 자유주제로 자신이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구성하면 된다. 교수 2명, 박사과정생 1명이 패널로 참여하는데, 티칭을 먼저 하면 발표에 대한 질문 답변을 하고 수업을 맡게 되는 상황을 가정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여러 질문을 받게 된다.
세 번째 세션은 Research Interview다. 또 다른 교수 2명과 박사과정생 1명과 연구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이전 연구 경험에 대한 설명과 그 경험이 어떻게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과 연결되는지, 관심 주제는 무엇인지, 입학하게 되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등등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세션에서 관심사가 겹치는 교수님이 해당 연구 변인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되냐는 심층 질문을 했었는데, 공부했던 것인데도 제대로 답변을 못해서 세션을 마치고 엄청 자책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여기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꺾여도 그냥 계속하는 마음이다. 세션이 워낙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한 세션에서 못했다고 해서 주저앉기에는 뒤에 연달아 남은 중요한 일정이 너무도 많았다. 예상치 못한 심층 질문이나, 어려운 질문들이 분명 있을 수 있기 때문에 100% 다 잘 대답해야만 한다는 잣대는 내려놓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오뚝이처럼 금세 잊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네 번째 세션은 재학생들과 질문 답변을 하는 시간이었다. 지원자들이 골고루 돌아가면서 궁금한 부분을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도 자기 차례에 물어보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전하면 된다. 놀랐던 것은 미국 학생들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인건비 문제나 급여, 워라밸 등을 허심탄회하게 정말 잘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덩달아 많이 얻을 수 있어 좋았다.
다섯 번째 세션은 지원하는 지도 교수와의 1:1 면담이었다. 여기서부터 사실 조금 지치기 시작하였으나, 초콜릿과 에너지 음료를 먹어가면서 떨어져가는 체력을 붙잡았다. 사전 인터뷰를 이미 진행했거나, 사전에 컨택을 하고 연구를 같이 진행하고 있는 경우 의외로 지도교수 면담에서 할 말이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여, 이 경우 이 시간에 할 질문을 미리 한 보따리 준비해 간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여섯 번째 세션은 Practice Interview로, 상담 실무에 대한 면담이었다. 학과 내 심리상담센터장을 맡고 계신 교수님과 1:1로 면담을 진행하였다. 사례가 적힌 종이가 주어지면 사례를 읽고, 사례 개념화와 상담계획을 브리핑하는 형식이다. 또, 기존 상담 경험이 있는 경우 어떤 케이스들을 주로 했고 앞으로는 어떤 인구를 중심으로 실습을 하고 싶은지 등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마지막 일곱째 세션은 Socializing 세션으로 재학생들과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캐주얼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대부분 지원자들이 이 시간쯤 되니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 다들 눈이 풀리고 말을 잃어서 웃겼다. 이쯤 되니 사실 궁금한 것도 잘 생각이 안 나고 에너지 드링크도 소용 없어지긴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궁금한 것을 몇 개 쥐어짜서 말이라도 한 마디 더 섞고 잘 마쳤다.
아침 8시에 시작한 면접을 마치고 보니 오후 8시였다. 두 번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다.
번외. 인터뷰 준비 편
사실 인터뷰 준비에 정말 감사하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쓰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네이버에서 미국 상담심리 박사 과정 인터뷰 후기를 찾아보던 중, 한국인 재학생 선생님이 게시한 모의 인터뷰를 도와준다는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당시 절박한 마음으로 신청을 했고, 총 두 번의 모의면접을 보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경험이 있는 선생님과 모의면접을 해보고 피드백으로 보완하니 긴장도 줄어들고, 한층 자신감이 생겼다.
지원하는 프로그램 중 1지망이었던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또 다른 한국인 선생님과도 컨택을 해서 정보도 얻고, 1지망 프로그램에 포커싱 한 모의 면접도 해보았다. 고칠 점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많은 피드백을 통해 정제하고 또 정제한 결과, 실제 인터뷰에서는 한결 다듬어진 채로 말을 할 수 있어 정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한국인 선생님과 컨택해서 도움을 받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미국에 와서 보니까 미국 상담심리 프로그램에 한국인 재학생이 생각보다 꽤 많다. 학과에 메일을 보내서 연결해달라고 요청해 봄직하다.
다들 도와주는 것에 얼마나 진심이신지, 같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씩 모의면접을 하고 피드백을 한바닥씩 받곤 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받은 마음이 많아서, 이렇게 입시 후기도 최대한 자세히 써보려 하고 있다. 또, 돌아오는 입시 시즌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라도 다른 한국인 지원자분들께 모의면접을 해드릴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
질문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최선을 다해 답변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훈훈한 마음으로 길고 긴 미국 상담심리대학원 박사 과정 입시 포스팅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