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대하던 두 번째 로드트립이 시작되었다. 지난번 플로리다를 다녀온 이후 장거리 로드트립에 효능감이 생겨 이번에는 동부로 진출하기로 했다. 이번 로드트립에서는 미디어에서 미국을 그릴 때 빠지지 않는 워싱턴 DC와 뉴욕을 다녀올 예정이다.
인디애나에서 워싱턴 DC까지는 꼬박 10시간이 소요된다. 5시간을 기점으로 핏츠버그 외곽 작은 마을에서 1박을 하고 총 이틀에 걸쳐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동부로 가는 국도는 남부로 향하는 국도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평지보다 산이 많았고, 독특한 산골 마을들을 많이 지나왔다. 광활한 산맥의 풍경을 지나며 미국은 로드트립 할 맛이 나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워싱턴 도착 첫날은 이틀간의 장거리 운전이 너무 피로해서, 푹 쉬고 이튿날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워싱턴 DC 여행 첫째 날의 여정을 기록해 보았다.
1. 미국 심리학회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심리학도의 성지 순례 코스라고나 할까, APA 양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한 미국심리학회다. 워싱턴 DC에 APA 빌딩이 위치해 있어서 투어의 가장 첫 일정으로 방문해 보았다. 워싱턴 DC에는 각계의 공공기관이나 비영리 단체의 본사들이 많아서 이번 투어에 남편과 각자의 전공과 관련된 기관들을 방문해 보는 자체 필드트립(?)을 포함시켰다.
APA는 운 좋게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일어나자마자 첫 여정으로 구경 다녀왔다. 견학이나 투어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휴일이라 닫은 채로 사람도 없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2. 브런치 카페 타테 Cafe TATTE
워싱턴에 계시는 로컬 피플에게 직접 추천받은 워싱턴 DC 브런치 맛집이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인지라 최저가로 호텔을 예약하느라 조식이 불포함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시간에 아점을 한 번에 먹는 작전으로 가기로 했다.
삭슈카라는 전통식과 연어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산뜻해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졸리고 늘어져 투어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외 테라스도 예쁘고, 디저트와 베이커리 종류도 많은 편이다. 야외 테라스가 너무 예뻤는데, 날씨가 더워 에어컨이 있는 실내 자리를 선택했다. 역시 로컬의 추천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
3. World Bank, IMF
이번에는 남편의 자체 필드트립이다. IMF와 월드뱅크다. 이곳 분위기는 주말의 여의도와 상당히 흡사했다. 여러 회사와 관공서들이 빽빽한 업무지구인데 주말이라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평일에는 얼마나 활기가 돌고 분주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었다.
으리으리한 본사들을 보니, 가슴 한 구석에 불이 지펴지는 기분이었다. 모쪼록 30대, 늦깎이 나이에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꿈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남들이 차 사고, 집 살 때, 벌이와 자본의 축적을 포기한 채 추구하는 배움이니 만큼, 미국에 있는 동안 알차게 실력과 지성을 갈고 닦을 수 있으면 좋겠다.
4. 백악관The White House
갸우뚱-. 생각보다 엄청 작고 잘 안 보인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최근까지 넷플릭스에서 지정 생존자를 비롯해 하우스 오브 카드, 나이트 에이전트 등 백악관 정치물을 과몰입하며 즐겨봤던지라, 익숙함을 느끼면서 봤다. 넷플릭스 미드에 자주 등장하던 비밀 경호국(Secret Service) 경찰들도 곳곳에 보이고, 드라마 상에서 폭파되고 부서지던 건축물들도 볼 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가서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있던데 사전 예약을 못해서 아쉬웠다. 밖에서만 보기에는 다소 심심하다.
5.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워싱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워싱턴 DC의 건축물들은 이 기념탑보다 높게 지으면 안 되는 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념탑 주변에 시야를 방해하는 건축물이 하나도 없고 탁 트여 있어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웅장하고 멋있게 보인다. 워싱턴 기념탑은 바로 앞에 가서 보는 것보다 아래 링컨 기념관에 가서 멀리서 보는 게 훨씬 예쁘고 잘 나온다.
기념탑 주변은 완연한 관광지 느낌으로 푸드트럭,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들이 완연하다. TMI 지만 소프트아이스크림을 $10에 판다(약 1만 3천 원꼴). 너무 비싸서 기절할 뻔했다. 하루 $100 미만으로 지출해야 하는지라, 소프트콘 하나를 $10에 먹었다가 남편한테 바가지 긁히느라 아주 혼이 났다. 하지만 이 소프트콘이 장장 2만 8천보를 걷는 이날 하루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후문이다. (당당)
6. 링컨 기념관, 한국전쟁기념관Lincoln Memorial, Korean War Veteran Memorial
그 유명한 링컨 기념관과 링컨 동상이다. 이곳이 워싱턴에서 뷰는 최고인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워싱턴 기념탑도 이곳에서 찍는 것이 훨씬 아름답게 나오고, 주변 공원과 인공 호수가 아름답다.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훨-신 커서 굉장히 웅장하고 아름답다. 크기가 크지만 한 번쯤 걸어 돌아볼 법하다.
이곳은 한국전쟁을 따로 기념하는 장소이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괜스레 무겁게 다가온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해지는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기념벽이 작년에 새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공간이 상당히 깔끔하고 모던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스팟이라 마음이 좋았다.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올 수 있었다.
7. 디스트릭트 리코District Rico
오늘 하루 위의 모든 일정을 도보로만 소화하고 나니 거의 3만 보에 가까운 걸음수를 기록했다. 하도 기진맥진해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헤맸으나, 일요일 저녁인지라 연 곳을 찾기 어려웠다. 간신히 찾아간 곳이었는데, 남미 요리 음식점이었다. 우연히 찾은 집 치고 맛있게 먹었다. 치킨 케밥 같은 메뉴였는데 치킨도 큼지막하고, 사이드인 코울슬로를 거의 밥 한 공기만큼 꽉 채워 주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상당히 추천하는 식당이다.
첫날 워싱턴 DC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니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다리는 너무 아프지만 이것저것 보고 담으며 천천히 다니기에 도보 여행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자체 필드트립도 다녀오고, 관광 지도 구경할 수 있어 충만한 첫날 일정이었다. 알고 있던 세상이 한층 더 넓어지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이 코스로는 두 사람 기준 하루 100불 미만으로도 충분히 잘 다닐 수 있어 가성비도 괜찮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 대학원생의 숙명을 수용한 채 연구 일을 마저 보고,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