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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Sep 21. 2019

퇴근길,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다

힘들어도 되는 것인가


  주중에 몸이 조금 아팠다. 해야 할 것이 쏟아져 산적하는 시점에 하필 몸도 성치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의욕 있는 편인데, 늘 몸이 마음을 못 따라준다는 생각을 한다(운동을 안 하는 게 함정이지만). 게다가 프리랜서 특성상, 늘리고 싶은 만큼 일을 늘릴 수 있어 때론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벌이게 되기도 한다.


  어제는 금요일, 모름지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풀로 일을 하는 날이다. 금요일 같은 경우는 9시부터 5시까지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풀타임 근무를 하고, 사설 상담센터로 이동해 7시부터 10시까지 상담을 하는 스케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기도 하다.



  5시에 퇴근을 하고 두 번째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감기로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만 같은 날에 하필 가장 빡빡한 일정을 보내려니 매우 지쳤다. 한 번 출근도 힘든데 하루 두 번의 출근이 왠 말이냐 생각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서울의 퇴근시간 지옥철에 비루한 몸뚱이를 위한 자리란 없었다. 콩나물처럼 빽빽한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손잡이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여기 앉아요
몸이 너무 안 좋아 보이네




  엄마뻘로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앞 뒤 잴 것 없이 감사하다며 넙죽 받아 앉았다. 아- 진짜 살 것 같았다. 천상의 안락함이었다. 지하철 의자가 이토록 아늑한지 정말이지 처음 알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약간의 민망함이 밀려왔다. 콩나물처럼 밀착해 서있는 퇴근하는 사람 중 안 힘든 사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지하철 의자에서 올려다본 사람들의 얼굴이란. 하필 밀도도 높아 다들 잔뜩 그늘진 얼굴이 하나같이 어둡고 지쳐 보였다. 순간 '내가 너무 유난이었나'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꼭 두 번의 출근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힘듦은 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육아 출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기 계발을 위해 퇴근 후 학원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닿자 이렇게나 힘들어하는 내가 안 좋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난 떠는 것 같고, 다들 이 정도는 힘들지 않은가 싶어서. 사실 이런 생각은 내가 '힘들다'는 말을 겉으로 못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현대인의 우울과 불안의 근간이 되는 사고이기도 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늘 힘들기에 앞서 '힘들어도 될까?' '과연 내가 힘들 자격이 있나?' '힘들만한 건가?'를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내 '내가 힘들다면 그건 힘든 거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힘들기를 비교해서 무엇하리.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줄까 싶기도 했다. 누가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것인지는 나의 힘듦과 완전히 별개다. 독립이라는 의미다.


   고로 나는 요즘 매우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라고 말해본다. 나부터 힘들다 말을 못 하면서 감히 누구에게 힘듦을 표현하라고 할 수 있으며, 누구의 힘듦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싶어서다. 개인의 힘듦은 누군가 인정해줘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교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님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나도 아직 힘들다 말하는 게 많이 어렵다. 그치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마음속에 지치고 힘든 마음이 들었다면, 그럴 만 한가를 재단하고 의심하지 말고 토닥여주기를 함께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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