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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01. 2019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 마주하고 있나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짐을 믿어요


"긴 하루였어요."



    데이트를 마친 남자 친구의 소감이자 한줄평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 어이구 힘들었구나. 이 날의 데이트는 여느 날 함께 보낸 시간보다 짧았다. 다만, 평소보다 감정이 조금 더 많이 오고 갔다는 차이가 있었다. 긴 하루였고, 다사다난했다는 말속에 그의 힘겨움이 전해져 왔다. 복잡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갈등을 잘 견뎌주고 노력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늘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솔직하게 감정을 다 표현하는 것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어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오가고 갈등이 생겨날 때에는 누구나 그 상황을 덮거나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여전히 이런 상황은 힘들고 어렵지만, 심리를 전공하고 집단 상담을 거듭해보면서 꽤나 익숙해졌다. 게다가 표현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기에 직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예의바름과 적정선을 지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부정적인 표현이 생경하고, 거부감도 크고 쉽지 않을 퀘스트였을 것이다.



    어려울 것은 잘 알지만 남자 친구와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가까운 사이이고 싶었다. 관계가 깊게 무르익고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솔직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외면하거나 옆으로 치워버린 불편한 감정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그만큼의 정서적인 거리감과 벽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설명하자 남자 친구도 이해를 하고, 어렵지만 노력해보겠다고 했던 것 같다.  






  

    이 날 만남에서, 늘 그렇듯 나의 서운함이 도화선이 되었다.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 나는 속상해하고 아쉬워하는데, 그 감정이 종종 크게 터지곤 한다. 이 날 남자 친구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서운해하는 게 부담으로 느껴진다고도 했다. 덧붙여 지난주에는 도 힘든 한 주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가며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문을 열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의 솔직함에 놀라기도 하고, 부담이라는 말에 섭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속마음을 게 되어 반가웠다. 듣지 않았다면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 몰랐을 일이다 - 겉으로 티가 잘 안나는 편이기에 더 그렇다. 힘겨워할 줄도 모르고 마음 놓고 내 얘기만 세게 했던 걸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렵지만 과감하게 내디뎌준 발걸음이 너무 예뻐 보였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게 익숙지 않고 어려웠다는 것과 더불어, 얘기해 보니 좋았다며 앞으로도 더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남자 친구의 말 믿음직스러웠다. 노력해보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대화로 말미암아 펼쳐지는 깊고 다채로운 관계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마음은 정말 넓고도 깊은 바다 같아서, 마음먹고 스킨스쿠버 하듯 깊게 들어가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다 안다고 느꼈던 나의 사람에게 얼마나 더 깊은 내면이 있는지 모른다.


      은 속을 꺼내어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거리감이나 장벽 없이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을 겪어도 말로써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음을 믿는다.  그렇게 함께 걸어 나가자고 내미는 손을 든든히 잡아주면 좋겠다, 지금처럼만.


   비온 뒤, 땅이 굳어짐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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