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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Feb 27. 2020

팔자에 없던 롱디를 하게 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되어 버린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남자 친구는 어느 목요일 오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지방 발령이 났고, 바로 다음 월요일에 모든 짐을 다 싸서 내려가고 말았다. 예측하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매우 혼란스러웠고,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었다. 연초부터 강제 생이별 어퍼컷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넉다운이었다. 평소에 최소 주에 2번, 많을 때는 4-5을 함께 보내기도 했던 우리였기에 갑작스러운 떨어짐을 수용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딘가 뻥 뚫린 허전한 느낌, 물리적으로 멀리 있다는 생각은 한 동안 고통감으로 지속되었다.



    사실 롱디는 내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롱디는커녕 고무신도 한 번 안 해본 내게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가뜩이나 자주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 나였기에 이 상황에 대해 저항감이 컸다. 갑자기 내 인생에 불쑥 들어온 롱디는 너무 싫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게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롱디는 현실이다.


    롱디는 감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힘겨움이 많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건 뭐 현대판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데 만남의 장애가 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당장 오고 가며 길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 비용, 숙박 문제, 불가피한 주말 일정들, 그로 인한 시간적 제약,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변수이자 복병인 코로나 19까지. 만남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의 발령은 어쨌든 우리 공동에게 벌어진 일이었고, 같이 감내해 나가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롱디의 어려움을 감당하는 건 내게 있어서는 선택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제약이 많지만 지혜를 많이 모아서 그런 제약들을 이겨내고 만날 때의 애틋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 롱디가 끝나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불가피하게 딱 한 번만 하고 싶은 뭐 그런 군대와 같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롱디의 가장 힘든 점


     롱디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재는 남자 친구의 온기일 것이다. 요즘은 영상통화의 품질이 꽤나 좋아서 시각적으로 만나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지만 백 번의 영상통화가 한 번의 만남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스킨십 때문이다. 늘 춥고 몸 여기저기가 얼음골 같이 차가운 나와 대비되게, 열이 많아 언제나 몸이 따뜻한 남자 친구를 끌어안고 있으면 따스하고 포근한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무처럼 길쭉하고 갸름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도(처음 만났을 때 남자 친구에게 무처럼 생겼다고 했다), 든든하고 너른 손을 꼭 부여잡고 있는 것도(손 한복판이 늘 튼 채로 있다), 빼곡한 짱구 눈썹을 어루만지는 것도(눈썹이 숱도 많은 게 엄청 두껍다- 한 2cm는 되는 것 같다), 다부진 팔뚝을 감싸 안는 것 또한(만지면 맨날 힘 꽉 준다) 마찬가지다.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남자 친구의 촉감을 느낄 수 없는 게 크디큰 슬픔이다.



     그뿐일까. 모든 만남의 끝이 항상 생이별로 다가온다. 이번에 보내주면 또 언제나 보려나 싶어 함께 서울에서 살 때 헤어지던 것과는 가닥 자체가 다르다. 이 부분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쉽사리 안되고 번번이 눈물샘이 터지고 마는 부분이다. 보내주기 싫은 마음이 머리 끝까지 차오름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리노라면 기차역 화장실에 들러 눈물 콧물을 뽑아낸 다음에야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를 수 있다. 그나마 가족들이랑 함께 사는 탓에, 멀쩡한 척하고 집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감정이 저절로 사그라들어 어떻게 저떻게 견디게 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눈물값 휴지값 받아야 할 것 같다_  나한테 잘해라




     쓰다 보니 그의 의지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고통을 안겨준 남자 친구 세 끼에게 화가 조금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는 내 맘으로도 그의 맘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은 것을. 이 시간이 너무 힘들지 않게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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