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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l 31. 2022

적응의 또 다른 이름, 시행착오

어쩌면 학습의 과정

  새 터전에서 삶의 기반을 다지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낯선 나라에 적응하고 인프라를 갖추어 나가려니 매일매일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정신없이 퀘스트를 해치우기 바쁘다가, 어느 순간 '어, 너무 힘든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천천히 마음도 챙기면서 해 나가야 한다는 내면의 신호다. 신호등에 노란 불이 들어왔다. 여기서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빨간불에 직진하는 격이다. 그러다 보면 사고가 나는 사태가 벌어짐을 너무 잘 안다.


  마음과 친한 나와 달리 남편은 마음의 소리나 신호에 익숙지 않다. 남편은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해야 할 일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만류했는데도 잘 듣지 않는다. 압박감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악몽을 꿨다며, 꿈에서 중고차를 잘못 사서 곤란해졌다고 했다. 꿈에서 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다니 좀 짠했다. 우리는 미국에 와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차에 대한 것이었다.





  남편이 지인을 통해 알아본 결과 블루밍턴은 워낙 규모가 작고, 학교를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 차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하고 1년도 안되어 유학을 나오게 되어 모아둔 돈도 거의 없고 해서, 잘됐다 싶었다. 차를 안 사도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계획이었다.


  그런데 왠 걸. 블루밍턴에 도착해보니 차 없이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 인도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에 차만 많을 뿐...... 남편이 다니게 될 학교를 둘러보고 오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러 몰에 다녀오거나, 식료품에서 음식을 사 오는 등 꼭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 하루에 평균 12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한 여름 34도 더위에  떙볕을 걷다 보니, 어지럽거나 힘이 빠지는 일사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피부는 또 어찌나 많이 타던지, 피부색은 포기하더라도 피부암에 걸릴 것만 같았다.

평균 12km 행군 또 행군
샌들 스트랩 모양대로 타버린 발


  우리의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위해,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어지더라도 차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차는 어림도 없고, 중고차를 중심으로 알아봤다. 그런데 요즘 미국 중고차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있었다. 생각보다 한참 높은 가격이 또 한 번 골머리를 앓았다.


  수중에 돈만 많으면 무엇이 걱정이랴. 매우 한정된 예산으로 탈 만한 차를 찾으려니 사막 속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나마 겨우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찾아서 문의해보면 이미 팔렸거나, 사고가 나 결함이 있는 차량이었다.


  으. 스트레스. 정말 쉬운 게 하나 없다.






   중고차와 마찬가지로, 치솟은 물가와 돈도 언제나 기저에 압박이 되는 요인 중 하나였다. 물가도 한국보다 기본적으로 1.5~2배는 높은 데다가 여기는 세금과 팁이 별도로 붙기 때문에 기본 가격에 30% 정도는 더 나간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실 때도 부담이 되어 집에서 마시게 된다. 이곳의 문화인 것은 알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 주제에 누군가에게 팁을 주고 있다는 게 참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외식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식문화도 시행착오의 대상이었다. 음식을 하나 시키면 어찌나 큰 사이즈를 주던지, 남편이랑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면 먹고 죽으라는 거라고, 먹다 죽을 나라라고 했다. 무엇을 시키든 무조건 스몰 사이즈다. 양이 너무 많은 나머지 음식점에 가서 둘이 메뉴 하나씩 총 2개를 시켰다가 한 가지 메뉴로 나눠먹고 남은 하나는 집에 온전하게 싸온 적도 있다.  또 전반적으로 음식이 굉장히 짜서 이 소금 맛에 적응하기도 쉽지는 않다. 원래도 짠 음식을 잘 안 좋아해서 난처하다. 음식들이 맛은 있는데 너무 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식사를 하고 나면 반나절은 갈증이 지속되는 것 같다.


커도 너무 큽니다... 먹다 죽을 아이스라떼
크다.... 버거도 크고 짜다..... 턱이 빠지겠다.....



  사소하지만 우스웠던 시행착오도 있었다. 몰에 가서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신어보다가, 사이즈도 모양도 딱 마음에 들어서 구매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키즈 제품이었던 게 아닌가? 발 사이즈가 240mm로 그렇게 작은 편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나라 키즈가 발이 이렇게도 크단 말인가?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덜트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군말 없이 사서 나왔다. 체구가 왜소한 편이라 왠지 옷도 키즈 옷도 충분히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으른의 자존심이 있어 넣어두기로 했다. 미국 키즈들 대단한 체구를 가진 것 같다. 



  적응을 하면서 겪는 이런 소소한 시행착오들이 때로는 가슴을 무겁게 누를 때도 있지만, 우습고 재밌을 때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적응을 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한 동안은 좌충우돌 우왕좌왕 계속 이럴 것임을 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큰 나쁜 일 없이 해냈으면 좋겠다. 


 삶의 무게에 눌려서 지금 여기에 주어진 귀한 기회와 시간임을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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