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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Apr 28. 2022

누군가의 삶에 다시 피는 꽃

 ~   하늘을 배경으로 핀 우아한 목련처럼  ~

 봄꽃이 한창 피기 시작하는 3월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 나오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핀 크림색 목련을 쳐다보다 말고 그만 발길이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고 피기가 바쁘게 땅으로 떨어지니 온통 쓰레기야, 쓰레기.” 

쓰레기통과 빗자루를 가지고 다니며 땅에 떨어진 목련을 쓸어 담고 다니는 경비 아저씨 한 마디가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자신은 생명력이 짧은 목련을 닮았다고 하던 사람이 생각나서 울컥했다. 

봄이 되면 우아하게 피었다가 금방 땅에 떨어지고마는 '목련’과 겹쳐 오롯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수년 전, 주말에 가끔씩 들려보는 집이 있었다. 

1급 지체장애 아저씨와 90세 가까운 할머니가 사는 집이었다. 아저씨는 스스로 걷거나 앉지 못하고 누워서 일상생활을 하셨다. 누가 옮겨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언어전달도 원활하지 않았다. 익숙해져야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를 교회에서 처음 뵈었을 때에 불쌍하다고 애써 웃으며 손을 잡아 주었지만 속으로는 사실 조금 두려웠다.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외모였다. 눈만 퀭하니 크고 볼이 쑥 패진 얼굴이고 말할 때마다 입도 삐뚤어졌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아저씨는 정말 봄 햇살처럼 밝고 따사로웠다. 

날이 갈수록 소탈하고 털털한 아저씨의 매력까지 돋보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만나고 돌아오면 1급 지체장애인을 돕는다기보다 1급 인생 선배를 만나 마음속 미세먼지를 훌훌 털고 삶의 허기를 채우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친모인 백발의 할머니가 아저씨를 돌보고 계셨다. 

다행히 할머니는 90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다. 인자하게 웃는 얼굴을 대하고 오면 꼭 전래동화에 나오는 할머니를 만나 오래 발효시킨 정을 듬뿍 얻어 오는 느낌이었다. 아저씨의 식사와 시중을 거뜬히 감당하는 할머니의 사랑 또한 남다르게 보였다. 부모의 책임을 넘어 아들의 자존감이 되는 할머니는 참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했다. 생명력을 품은 봄 햇살 같았다.          

 


 주말 오후에 아저씨를 자주 찾아가 보곤 했다. 

내가 아저씨와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거나 가사도우미의 역할을 해주거나 아저씨를 돌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생활비는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었고, 살림살이도 할머니가 물샐틈없이 하고 있었고, 힘으로는 내가 아저씨를 들어 옮겨줄 수도 없었기에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저 한 주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무도 찾지 않는 아저씨 집에 사람의 온기를 전해 주는 일이었다. 동정이나 봉사가 아니고 서로 간 신뢰로 쌓아온 정이었다.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온종일 누워서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다. 

할머니도 온종일 아저씨 시중을 드느라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한 주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저씨와 할머니에겐 기쁨이고 힘이 되는 것이었다. 또 사실 나에게도 터놓고 말하는 기쁨이었다.          

 종종 간식이나 반찬거리를 조금 가져갈 뿐, 얼마나 뭘 사들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저씨와 할머니를 찾아가서 그저 함께 놀다 오곤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저씨와 할머니는 반가워하고 고마워했다.      

 


 아저씨는 라디오를 통해서만 세상에 대해서 듣고 아는 것이었다. 

날씨, 사건 사고 등 라디오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직장과 가사 일로 바쁜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소식들도 아저씨를 통해서 듣고 알 때도 많았다. 그저 아저씨와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면 온갖 불평불만들도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감사를 충전해서 돌아오곤 했다.      



  방 안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며 들린 어느 여름날, 아저씨는 남들은 땀 흘리며 고생하는데 자기는 이렇게 시원하게 선풍기 바람 앞에서 가만히 누워서 지내니 누군가에게 미안할 정도로 감사하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찬바람 맞으며 출퇴근하는데 자기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지내니 죄책감이 들 정도로 감사하다고 했다. 비록 몸을 직접 움직이지 못 하지만 아저씨의 생각만큼은 제대로 움직이고 참 반듯했다. 바르고 건전했다.

여기저기 종교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고자 했지만 아저씨는 전도를 목적으로 동정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셔서 거절하셨다.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세 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셨다. 내면의 당당함이 편해서 나도 빈 손으로 마음만 가지고 가도 부담이 없었다.          



 3월 새 학기에 바빠서 몇 주간 찾아가지 못해서 한 달여 만에 아저씨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밖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고 산수유, 목련, 개나리, 벚꽃이 릴레이를 하며 피고 지고 있는데 온종일 집에 누워만 지내는 아저씨가 얼마나 답답하실까. 내가 3월이 가장 바쁘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너무 뜸해서 서운해하지는 않았을까 조금 미안했다. 가는 길에 아파트에서 목련 꽃 몇 송이로 우아한 꽃다발 한 묶음 만들어 가져 갔다. ‘봄의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아저씨와 할머니의 얼굴이 목련 꽃처럼 환하게 웃음꽃으로 만발했다. 

내가 준 목련 때문인 줄 알았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아저씨도 나에게 보여줄 봄 선물이 있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서 아저씨에게 주었다. 무슨 증서로 보였다. 나라에서 더 큰 혜택을 받게 되었나 보다 짐작했다. 아저씨가 보여준 것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놀라게 했다. 그것은 장기기증 증서였습니다.     


아저씨가 신이 나서 설명하셨다. 

이제 할머니도 90이 넘었고 자기 나이도 60이 가까웠는데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을 받기만 하니 자기 삶은 한 마디로 빚진 삶이었다고 했다. 자기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자기도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봄이 되어 추위도 풀리고 해서 대학병원에 신청을 해서 자기 몸에서 남에게 줄 수 있는 건강한 장기를 검사받았다고 했다.     

 평생 공부를 하지 않아서 시력이 2.0으로 너무 좋았다며 껄껄 웃으셨다. 사지는 못 움직이지만 신장, 간 등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그래도 몇 곳 있었다고 좋아했다. 아저씨는 건강한 장기들은 자기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증서로 받아왔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준 목련처럼 자신은 빨리 지고 말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의 눈이나 장기로 누군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목련처럼 빨리 진다 해도 자신은 이제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저씨의 얼굴엔 봄 햇살이 퍼지듯 생동감을 품은 웃음이 가득했다. 숙제를 마친 어린아이처럼 정말 행복해하셨다.     



 그 후 아저씨를 돌보시던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 요양원으로 가셨던 아저씨도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약속대로 장기기증도 하시고 떠나셨다.          



 봄이면 피기가 바쁘게 땅으로 떨어지는 목련을 닮은 아저씨!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 다시 꽃을 피우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산책길 어딘가에서 아저씨가 꽃을 피우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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