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신옥 May 01. 2022

덤으로도 살아요

~  덤으로 준 것이 손해가 아니고 남는 것 ~

 운동 삼아 걸어가기 딱 좋은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어서 좋다. 

자연과 교감하는 산책도 좋지만 가끔은 사람 소리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삶에 생기를 더해 준다. 웬만한 불평불만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라앉았던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기도 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 리어카들을 지나가다 눈길을 끌어서 발길을 멈추면 그냥 지나가기 민망하다. 그들에게 희망 고문이 될까 마음에 걸려 값을 물어봤으면 조금이라도 사고 만다.           

 즐비한 채소전을 지나가다 보면 철을 따라 나오는 채소이다 보니 진열된 채소 종류가 가게마다 비슷하다. 어디에서 사야 할지 발길 멈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물건이 비슷하니 때로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라고 사고, 때로는 손님이 뜸한 곳이라고 사고, 때로는 호객행위인 줄 알지만 말 한마디 뿌리치지 못해 사기도 한다.      

 


 그러다 드디어 최근에 채소 사는 곳이 정해졌다. 

식구도 적고 해서 만들어 놓은 한 무더기의 반만 사도 싫은 내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닐봉지에 넣어 줄 때 꼭 덤을 넣어주는 곳이 있었다. 부추 반 단 샀는데 청양고추 서너 개라도 넣어주고, 오이 한 바구니 샀는데 당근 하나를 덤으로 넣어준다. 2,3천 원어치 팔면서 덤으로 꼭 고추 하나라도 덤을 얹어준다. 거기다 꼭 덤으로 덧붙이는 말까지 있다. 아줌마는 돈을 받으며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 예.”라고 대답을 하고 만다. 물건과 돈을 주고받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고객의 대접까지 덤으로 얹어서 받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몇 년째 홍삼을 단골로 주문해서 먹는 곳이 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매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올라온 전통식품 직거래 장터가 열리곤 했다. 친정엄마한테 사주던 홍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메이커 홍삼이었다. 혹시 유명 메이커가 아니면 싼 것을 사준다고 오해받을까 봐 꼭 유명 홍삼을 사서 보내곤 했다. 지금은 친정엄마도 홍삼이 몸에 안 받는다고 끊은 지 오래다.      

 나와 남편이 먹는 것이라도 부담을 덜기 위해서 직거래 장터에서 유명 메이커 한 병 값에 두 병인 홍삼을 구입했다. 유명 메이커는 아니지만 농축산부와 식품의약품 안전처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었다. 30년간 직접 재배한 인삼으로 만든 흑홍삼이라고 제조과정을 설명하느라 땀 흘리던 부부의 간절함에 발길이 붙들려 구입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년간 계속 단골이 되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라 문자로 주문하고 계좌이체를 시키고 있다. 사실 사장님 얼굴은 기억에 없다. 목소리와 제품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처음 주문할 때 그대로이다. 거기다 주문한 홍삼이 온 택배 상자 속에는 고맙다는 뜻으로 늘 덤이 따라온다. 홍삼 캔디나 젤리가 올 때도 있고 직접 달인 홍삼포가 몇 봉지씩 올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산에서 캤다면서 두릅을 한 봉지 보냈다. 물가가 많이 인상되었는데도 단골이라고 몇 년째 홍삼 가격도 그대로 받으시는데 힘들게 캔 두릅까지 덤으로 받고 나니 비대면이지만 진심을 대면한 듯 고마웠다.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는 지인에게 흑임자(검은깨) 가루를 주문했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시아버님은 검은 깨죽을 좋아하신다. 깨죽 가루를 주문했는데 볶은 깨와 들깻가루 한 봉지씩이 덤으로 따라왔다. 가끔은 고맙고 미안해서 나도 웃돈을 조금 더 얹어서 계좌이체를 시키면 성화를 낼 정도로 만류를 한다. 믿고 애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별 것 아닌 것 주었다고 절대 웃돈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깨죽 가루 대금만 보내야 계속해준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세상은 덤으로 사는가 보다. 

물건을 받고 돈을 지불하고 나면 계산은 끝난다. 제 값보다 더 따라온 덤이 정작 사람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덤으로 받은 사랑의 빚 때문인지 마음이 이어지고 발길이 간다. 안부를 챙겨주는 말까지 덤으로 주고받으며 덩달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일로써만 만나는 관계를 넘어 믿음이 생기고 진심이 전해지고 고마움이 쌓인다.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지인이 남은 삶은 덤으로 산다고 했다.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대한 집착도 욕심도 자꾸 내려놓게 되더라고 했다. 아마 덤을 얹어 주는 사장님들 마음도 같을 것이다. 매달 수고한 대가로 월급 받고 일하다 퇴직을 했으니 이제 덤으로 살아보는 삶은 어떨까.      

 


 홍삼 사장님처럼 얼굴을 모르는 비대면이면 어떻고, 방앗간 사장님처럼 이미 나를 다 아는 사람이면 어떻고, 얼굴 본적 없이 화면의 텍스트상이면 어떠랴……. 그저 덤으로 받은 것이라 더 고마움으로 마음에 남는다.      



덤! 

별 것 아니라고 하면서 얹어 주는데 별 것이었다. 

기대한 것이 아니기에 더 고마웠다. 그저 받은 듯한데 마음에 남는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타가 되곤 한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기에 고마움이 되고 정이 되고 세상 사는 맛을 더 했다. 베푸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이나 희생이 아니면서 받은 사람에게는 팍팍한 세상에 단비가 된다. 무디어진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순간이나마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덤으로 준 것이 남는 삶인지도 모른다. 

대단한 능력자는 아니지만 진정성을 담은 말 한마디부터라도 덤으로 주는 삶!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덤으로 사는 삶을…….  


                           ( 덤으로 받은 볶은 깨와 두릅에도 촛점이 맞추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삶에 다시 피는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