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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Aug 01. 2022

줄 하나 차이

~ 다행이면 만족 ~

여름방학을 맞아 교회에서 초등학생 행사가 있었다.

정식으로 맡은 것은 없지만 혹시 허드렛일이라도 손이 필요할까 봐 참여했다.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부담이 적고 마음이 편했다. 연륜에 비해 많은 양의 요리에 자신이 없어서 그저 전문가 어깨 너머로 레시피도 익히며 뒷설거지를 했다.           



 1박 2일 행사를 마치고 집에 오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피곤했다.

나는 겸손이 아니라 사실 얼마나 신앙이 좋아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정도라도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사에서 아주 물러서지 못하고 아직 봉사 주변을 맴돈다. 이제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행사 진행 방식에서도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실감했다.           



 혼자 거실에 앉아 멍하니  나이 탓도 하고 능력도 탓하며 의기소침해지고 있을 때였다. 초등부 책임자 선생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 중에 코로나 양성자가 나왔단다. 아마 아이 아빠 회사발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편 나를 걱정하는 문자였다. 행사하는 동안 온종일 주방에서 그 아이 엄마랑 함께 있었으니 혹시 모를 일이니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 엄마도 양성반응이 나왔다.          



 아,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왔나 보다.

의기소침해지며 늘어지던 몸과 가라앉던 마음이 갑자기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불안도 때로는 에너지가 되나 보다. 더위도 잊어버리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집에 자가 진단 키트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이었는데 어느새 불안으로 가득 찼다.           

 앉은뱅이 간이 책상 위 검사 키트 앞에 나도 모르게 정중하게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래도 이왕 하는 검사 정확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면봉을 콧 속 깊숙이 넣고 충분히 젓고 검사 키트에 투하시켰다. 15분 이상 지나야 반응이 제대로 나온다니 기다리는 조급함을 잊으려고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상추도 씻었다.           



 손으로는 일을 하지만 머릿속은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염려와 궁리로 일하는 손이 떨고 있었다. 내가 양성이면 가족들과 어떻게 격리를 할 것이며 지금까지 해오던 가족들의 일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저 굴러온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살아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이었는지, 그것만으로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검사 키트 줄이 하나이냐 두 개이냐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이 이렇게 심각할 줄이야. 잠만 집에 와서 잤을 뿐 그 학생 엄마와 행사 내내 주방에서 같이 있고 가까이에서 담소도 많이 나누었고 식사도 함께 했기에 확률적으로 자꾸 불안했다.  현재 증상은 없지만 함께한 시간으로 볼 때 충분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어쩔 수 없다

이제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전자키트를 응시했다. 순간, '휴!' 줄은 하나였다. 다행이었다. 혹시 착시일까 해서 다시 보았다. 분명 줄은 하나였다. 아, 십년감수했다. 그냥 흘려버려도 티도 안 날 한 30분 사이 최악까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거실 공기밀도가 달라졌다. 가볍고 환해진 거실로 다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을 넘어 행운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이 이렇게 큰 다행이고 감사인 줄이야.

의기소침하던 기분은 싹 날아갔다. 나이가 들었으면 어떻고 시대에 뒤처졌으면 어떠랴. 덜덜 떨던 손을 모아 감사를 드렸다. 줄이 하나 더 그어지고 덜 그어지는 순간에 따라 일상이 부서지고 흔들릴 수도 있었다. 줄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약한 인간이었다.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피곤해서 밥 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 뭘 배달시켜 먹을까 검색하던 몸은 어디로 가버렸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다시 평소처럼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렸다. 소음이 아니고 사람 사는 소리였다. 가족들을 위한 점심을 준비했다. 코로나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되고 열심히 살 힘을 낼 수 있었다. 뜨거운 열기에도 국수를 삶고 양념장을 만들어 비빔국수를 했다. 아무도 따로 먹어야 하지 않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다행한 일이었다.            

 


 내일 일은 모르겠다.

오늘을 평소처럼 살 수 있어 다행이고 만족했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삶을 또 살아냈다.



( 뜨거운 태양볕에도 매일매일 지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여름꽃들이 대견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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