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로 낸 껌 값

~ 살며 ~ 배우며 ~

by 강신옥

백화점 지하층 출입문 앞 판매대에서는 할인행사를 하고 있다는 판매원들의 외침이 야외용 확성기를 통해 지하를 울리고 있었다.

판매대에는 횡재를 만난 듯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냥 가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나도 무리 속에 끼었다. 이월상품 스포츠웨어, 주방용 기구, 메이커 구두, 메이커 핸드백……등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내가 오늘 사려고 마음먹고 나온 품목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횡재를 놓칠 새라 만져보고 들어 보고 사이즈를 찾으며 사람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물건을 뒤적였다. 일단 구경을 했으니 마트에서 장을 보며 생각해보고 사야겠다며 물러났다.


그때였다. 저만치 떨어져 앉아계신 할머니 한 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지하도로 향하는 계단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시골에 혼자 계신 올해 90세인 친정엄마와 겹쳐 보여 발길이 할머니에게로 갔다.

깔끔한 한복에 비녀를 지른 회색빛 머리, 흰색 고무신까지……. 마치 전래동화책에서 방금 나온 듯 단아하고 고전적인 모습이었다. 연세로 봐서는 집에서 편히 봉양을 받아 마땅할 것 같은 할머니로 보였다. 할머니 앞에는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껌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수량은 적지만 껌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껌을 거의 씹지 않아서인지 내가 모르는 껌도 많았다. 껌을 사려는 줄 알고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의 퀭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뭔가 서러움 같은 것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온갖 물건이 다 있는 고층 백화점과 할인행사에 몰려드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앉아계신 할머니는 마치 고독한 섬처럼 보였다.


나는 그 섬에 발이 묶여버렸다. 조심스레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을 걸었다. 할머니도 이웃을 만난 듯 친밀감을 보이며 격이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든셋이라는데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다. 집에 있어도 나라에서 생활비도 나오지만 놀고먹으면 뭐하냐는 것이다. 지하철도 무료여서 오고 가기도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백화점 앞이라 주눅이 들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 구경도 하고 시간도 잘 가고 껌도 되는대로 욕심 없이 팔면 된다고 하셨다.

푼돈 같지만 모아서 손자들 과자도 사주고 할머니 친구들한테 밥도 사신다는 말을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집에 있으면 여기저기 아픈 것만 생각나는데 매일 다니면서 건강해졌다고 하셨다. 참 대단하시다고 하니 별일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흔히 봐온 껌을 파는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껌으로 구걸을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한복을 입은 모습, 고객을 위해 준비한 다양한 껌들, 500원, 1000원…… 껌마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또박또박 써놓은 가격은 적정 가격 이상의 구걸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있으면 골라보라는 의연한 권유. 분명 그것은 구걸이 아니라 할머니의 일이었다.


대형 백화점 앞에서도 당당한 할머니의 사업이었다.

살아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의미로 내 가슴을 두드렸다.


과연 나는 할머니처럼 한껏 살 수 있을까!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 나이 예순을 넘자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퇴직할 때가 되니 몸의 진이 다 빠진 듯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다리야, 팔이야”를 부르며 마음까지 주저앉곤 했다.


몸이란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다 각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할머니를 보며 주저앉은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몸도 추슬러보았다. ‘그래 100세 시대인데 벌써 이래서야 되겠느냐’ 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잘 사는 것, 근사하게 나이 드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할머니가 인생선배로서 몸소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한껏 살아야 하나보다.

껌의 맛도 모르면서 종류별로 몇 개를 샀다. 값싼 동정심도 알량한 연민도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가르쳐주신 할머니께 드리는 수업료였다. 인생 수업료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껌 값이었다.

껌 값으로 배운 삶이지만 조금 씹다가 ‘훅’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껌을 팔고 계시던 할머니가 자주 떠오른다. 껌 값으로 배운 것이지만 결코 쉽게 버릴 것이 아니었다. 생생한 가르침이 아직도 가슴에 오롯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살아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한껏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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