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꾸며

~ 살며 ~ ~ 배우며 ~

by 강신옥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잠시 살아본 적이 있었다.

늘 TV 화면으로 시골 전원주택을 보며 퇴직 후를 꿈꾸던 집이었다.


화려한 대저택은 아니지만 정원을 가꾸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푸른 잔디, 사철 정원 지킴이였던 주목, 크림색의 우아한 목련, 무리 지어 피어 더 화사하던 영산홍, 은은한 연보라 수국, 여름을 잘 이겨내던 주홍빛 능소화, 늦가을까지 정원을 빛내주던 분홍빛 백일홍, 금빛 메리골드……등 초록과 어우러진 꽃들의 향연이 열리는 마당에 나가 꽃 이름 부르며 쓰다듬고 손질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원이나 식물원에서 전문가의 손길로 가꾸어진 나무나 꽃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의 손길과 정성으로 가꾸기에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매일매일 자라는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없던 꽃망울 하나만 맺혀도 감탄하며 애지중지하고, 잎사귀 하나만 누렇게 변색되어도 어디 병이 들었나, 물을 제때 주지 못 했나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정원이라고 부르기에 쑥스러울 정도로 그리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들도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살고 있었고 자식처럼 귀했다.



그래서일까!

정원은 또 하나의 삶의 교과서로 펼쳐져서 소리 없이 나를 일깨워주곤 했다.


처음엔 잔디와 잡초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다 같은 초록 풀인데 왜 누구는 잡초라고 뽑아내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어렴풋 잡초를 알게 되었다. 잡초는 내가 심지 않아도 잘도 올라왔다. 땀 흘려 가꾸지 않아도 잘도 자랐다.

늘 내 마음에 올라오는 불안이나 쓸데없는 생각과 흡사했다.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면 잡념을 뽑아낸 것처럼 마음이 개운했다. 마른땅에서는 잡초 뿌리와 씨름을 해야 뽑힐 때도 있었다. 내 마음이 메말라 있을 때에 잡념이 뿌리를 내리는 것과 닮았다. 늘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정원을 손질해줘야 하듯 마음도 팍팍해지고 거칠어지지 않도록 늘 가꾸어야 하는 것을 잡초에게서도 배웠다.


잔디 가장자리에 채송화가 자라고 있었다.

모종을 옮겨 심을 때에 실핏줄처럼 가녀린 뿌리를 다칠까 봐 노심초사했다. 약한 뿌리, 가녀린 줄기로 얼마나 살지 미심쩍었다.

겉보기와 다르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아침 햇살이 비출 때면 어김없이 활짝 피어 아침인사를 보내주곤 했다. 한낮의 뜨거운 뙤약볕에는 죽은 듯 시들어 보이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곤 했다. 작은 뿌리로도 폭염과 장맛비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작은 일에도 곧잘 약해지고 주저앉게 되는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채송화가 속삭였다. 폭염과 장맛비에 활짝 웃을 수는 없지만 삶의 뿌리마저 흔들리지 않는다면 매일 아침 어김없이 하루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씨가 떨어졌는지 호박이 넝쿨을 뻗기 시작했다.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연둣빛 호박이 속속들이 영양 만점으로 누렇게 익어갈 때 함부로 늙은 호박이라고 불렀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호박넝쿨이 홀로 서기 힘들었나 보다. 옆에 있는 주목을 의지하듯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옆에 있는 누구라도 감고 기대며 넝쿨을 뻗어갔다.

열매가 되기까지 혼자서는 호박도 힘에 겨웠나 보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며 여기까지 왔겠지. 이제 누군가에게 주목처럼 버팀목이 되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면 거실에서 가끔 통유리를 통해 마당을 바라보곤 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이리저리 쓰러질 듯 휘어지는 초목들을 보며 불안했다. 허리라도 꺾여버릴까 조마조마했다. 그건 내 마음일 뿐이었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렇게 흔들리다가도 바람이 멎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곧 제자리로 돌아가 평온했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주는 물을 먹고 나무도 자라고 꽃도 피는 줄 알았다. 잠시 목을 축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비가 와야 땅속뿌리까지 흠뻑 젖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산천초목을 키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흡족해져서 아침 햇살에 활짝 웃는 꽃, 새뜻해진 초록들을 보면서 사람은 그저 즐기고 기뻐할 뿐이었다. 그저 나도 덩달아 맑아지고 넉넉해질 수 있었다. 그 넉넉함으로 비 온 뒤에야 잡초도 뿌리째 쏙쏙 잘 뽑아졌다.




참새가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앉아 쉬었다 가고, 벌 나비까지 찾아와 함께 어우러지는 정원을 보면 우리 마당을 찾아준 그들이 반갑고 고마워 쌀이라도 한 줌씩 뿌려주곤 했다.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원은 책이 되고 소리가 들렸다.

저마다 이런저런 속삭임을 들려주었다.

그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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