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일심동체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

by 강신옥

남편이 배탈이 났다. 장염이나 식중독이 의심된다고 했다. 두통까지 있다며 하루를 굶어보겠단다. 전날 저녁밥상에서, 겨울 보양식이라고 극찬을 했던 ‘굴’이 의심되었다. 생각한다고 남편 국에는 특별히 굴을 골라서 더 많이 퍼주었다. 굴전도 자꾸 권했다. 한파에 떨었던 온 식구의 몸과 마음을 확 풀어준 굴이었다. 마음과 달리 나는 남편에게 배탈이 나게 하고 말았으니. 말로 다 표현은 안 해도 미안함과 죄책감이 나를 옥죄었다.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남편은 병원 가서 기다리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며 출근을 했다. 원래 남편은 약발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이라고 병원 가고 약 먹는 것을 꺼렸다. 원시적이라고 핀잔을 줘도 남편은 배탈이 나면 무조건 굶는다. 남편 방식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체념을 했지만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고향 친구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극구 사양하는데도 친구는 뷔페 점심을 사주었다. 남편 걱정하는 나에게 친구는 부부 일심동체이니 남편 몫까지 두 배로 먹으라고 했다. 남편은 굶고 일하고 있는데 나는 진수성찬이라니……. 남편이 가시처럼 자꾸 목에 걸렸다. 회덮밥, 양념갈비, 다양한 야채 샐러드 등등.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 앞에 설 때마다 남편이 겹쳐 보였다.



친구와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 지하상가를 걸어가는데 내과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처방전만 있으면 약을 살 수 있는 데…….’ 남편 대신이라도 약을 지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 부부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은가.’ 남편 대신 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을 병나게 한 죄책감과 속죄하는 심정까지 가세해서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갈 용기를 내게 했다.




대기자가 없어 접수하자마자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남편의 증상을 나의 증상 인양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마치 내가 의사인양 장염으로 의심이 된다고 강조했다.


의사 선생님이 컴퓨터 자판으로 메모를 끝낼 즈음에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사정을 말했다. 궁색한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증상의 당사자는 내가 아니고 남편이라고. 남편은 워낙 바쁘고 병원 오는 것을 싫어해서 대신 온 것이라고. 부부 일심동체이니 제가 대신 처방전으로 약을 지어가고 싶다고 했다. 참 무식한 아줌마였다.


혹시 거절당할까 봐 얼른 덧붙였다. 같이 굴을 먹었으니 정도 차이는 있어도 나도 비슷한 증세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진짜 속이 좀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빨리 처방전을 받고 싶은 것은 내 사정일 뿐이었나 보다.



의사 선생님은 두드리던 자판을 멈추었다. 뜨악한 표정으로 황당해했다. 무식하다고 화를 내며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가 막혀서인지 다행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해도, 같은 음식을 먹어도 체질에 따라서 전혀 반응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일어나시더니 일단 진료실에 마련된 작은 침대에 누워보라는 것이었다.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까진 아닌데…….’

이제 와서 멈출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주저할 틈도 없이 침대에 눕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아랫배 이곳저곳을 눌러보았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의사의 선고만을 기다렸다.

“가스가 조금 차긴 해도 식중독이나 장염은 아닙니다. 혹시 과식한 것 아닌가요?” 순간 너무 놀라웠다. 돌팔이가 아니고 진짜 전문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 탄복했다. 아무래도 남편이 직접 오셔야 할 것 같단다.

병원 들어올 때의 부부 일심동체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내가 장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퇴근한 남편을 설득해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진짜 장염이었다. 주사 한 대 맞고 며 칠 분 약도 처방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부 일심동체’를 되뇌어보았다. 매사에 일치하는 정도를 부부 일심동체이자, 사랑의 척도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서로 ‘다름’을 더 못마땅해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인데 남편은 밤늦게까지 자기 일을 하는 ‘저녁형’이다. 마치 ‘아침 형’만이 성실한 사람인양 ‘아침 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우겨왔다. 나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데 남편은 여러 책을 비교하면서 읽는다. 도서관에서 한 번에 여러 권을 빌리는 남편에게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읽으려고 하느냐고 늘 제동을 걸곤 했다. 나는 아침에 머리를 감는데 남편은 바쁘다고 밤에 머리를 감는다. 속으로 참 별나다 생각했다.

어디 그뿐이랴. 중대사에서 시시콜콜한 인생 잡사까지, 다를 때마다 부부 일심동체와 관련시키며 흔들려야 했던 이 불편한 진실.


진료도 주사도 대신할 수 없었던 생생한 현실. ‘부부도 엄연히 서로 다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 나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 마음만 들이대서 남편에게 가슴앓이를 시킨 일도 허다했을 것이다. 그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그럭저럭 이 정도라도 살아오다니……. 가슴 한편이 찡했다.



부부 일심동체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였나 보다.

그랬구나! 가슴을 스치는 이 생각, 돌아서면 잊어버릴까 생각주머니에 깊이 새겨 넣었다.

자주 꺼내보고 싶었다.



주머니 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를 중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염 치료를 위해 저녁에 무슨 죽을 끓일까 궁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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