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스승

~ 몰래 온 천사 ~

by 강신옥

매년 스승의 날이면 혼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이 있다. 그날을 떠올리면 부드러운 오월의 햇살이 가슴 가득 퍼지곤 한다.


십여 년 전 그 해에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스승의 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미리 일러주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꾸지 않는데 김치 국물부터 마시는 것 아닌 가 좀 민망하지만 일찌감치 1주일 전부터 예고를 했다. 선물이니 이벤트를 사전에 원천 봉쇄하고 싶었다.


예고가 늦으면 엄마가 미리 사 두었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며 선물을 들이미는 아이들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 일절 사절, 꽃 한 송이도 사양.’이라고 알림장에 쓰게 하고 반드시 부모님 확인을 받아오라는 과제를 냈다.

아이들에게는 이유도 설명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의 선생님이지 부모님의 선생님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가 대신 사주는 선물은 사양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중에 커서라도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주는 것이 진짜 받고 싶은 선물입니다.


( 아이들은 실망으로 표정이 일그러진다.) 엄마가 주는 선물로 선생님한테 의기양양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질문은 거의 같았다. 꽃 한 송이는 자기 용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인데 왜 안 되는 것이냐? 하면서 불만에 가까운 질문을 한다.



선생님이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 것이 이유라고 설득했다.

꽃 한 송이는 허락한다고 하면 너도 나도 꽃 한 송이씩 사들고 오겠지요?

받을 땐 “ 고마워, 고마워.”라고 인사하고 받는데 선생님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아서 나중에 꽃이 모이면 이 꽃이 누가 준 것인지, 저 꽃이 누가 준 것인지 구별도 안 되고 기억도 안 납니다.


선생님이 진짜 좋아하는 꽃은?

(아이들은 내 입에서 무슨 꽃 이름이 나올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운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라는 꽃, 활짝 피어서 사람들에게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꽃이고. 선물입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눈빛이 빛나고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교실이 온통 꽃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 알 수 없는 열기는 나와 아이들이 뭔가 한마음이 되게 하고 이미 축제의 기분을 맛보게 한다.


스승의 날이라고 칠판에 색분필로 온갖 축하 메시지를 쓰고 법석을 떠는 것도 사절했다. 아이들은 돈도 안 드는데 그건 또 왜 사절이냐고 묻는다.


그것도 이유는 내 능력 부족이다.

아이들 통제 불능. 나를 축하해준다는 명목인데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헷갈릴 정도로 온종일 붕 뜬 교실 분위기. 스승의 날인데 체면상 야단을 칠 수도 없고 그야 말고 억지 춘향이 되는 날이다.


나는 어쩌면 아이들 기분을 맞춰주지 못하는 속 좁은 선생님이었다.

좀 미안하지만 평가는 먼 훗날로 미루고 싶었다. 아이들은 나의 입장 발표에 다소 기분이 가라앉지만 한편 뭔가 안심하며 수긍을 하는 눈치다. 예고했지만 스승의 날 전날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해 스승의 날 아침.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을 했다. 일찍 출근해서 내 자리를 지키면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날 하루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텅 빈 운동장을 지나 교실 문 앞에 당도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전날 분명 교실 문을 잠그고 퇴근을 했는데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았다. 내 기억과 달리 또 깜빡한 것인가. 나이를 탓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교실은 어제 그대로였다. 휴~ 안심을 하며 교실 전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교실 중앙 칠판 옆 보조 게시판이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 이럴 수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 강신옥 선생님! 스승의 날을 축하합니다. ~라는 타이틀 아래에 꽃과 색종이, 스티커로 만들어진 축하 게시판 앞에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코끝이 찡했다.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솟구쳤다. 게시판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니 누가? 언제 와서……!

짐작하건대 내가 맡은 5학년 아이들 솜씨는 아닌 듯 했다. 그렇다면? 요즘 세상에 이런 학부모도 있나? 하루 온종일 ’ 누가 했을까!‘ 궁금증을 짓누르느라 애를 썼다.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과 학부모를 줄 긋기 하며 맞춰보느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차마 아이들에게 힌트를 얻어서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누가 했는지 놀라고, 궁금해서 나에게 자꾸 물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우리 사이에 숨어 있는 천사가 와서 했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니 누가 했는지 알려고 하는 자체가 말을 잘 들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고 원망을 자초하는 일로 여겨졌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우리 반 학부모 모두가 한 일이라고 믿고 싶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선생님의 옛날 제자들이 밤에 와서 하고 갔을지도 모른다며 추리 탐정소설을 풀어놓기도 했다.


누군들 어떠랴!

눈 딱 감고 늘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때로는 이 아이 저 아이, 이 엄마, 저 엄마의 말 조각들까지 맞춰보며 추측을 하다 보면 그들 모두가 날개 없는 천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스승의 날을 없애자’라는 글이 올라왔다는 뉴스 보도를 접했다. 선생님들까지도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자’에 동의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로 봐서 백 번 이해가 된다. 날이 있고 없고 가 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관례적인 행사나 선물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음의 언어로 느끼고 소통하지 않는가.


평생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기에 어쩌면 스승의 날은 우리 모두의 날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사는데 바빠서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도 스승의 날이 되면 세월 속에 가라앉아 있던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스승의 날이 없어져도 마음속에 접어둔 선생님에 대한 감사는 삶의 어느 모서리에서 펼쳐보게 될 것이다. 스승의 날은 개별적으로 계속 이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20대 청춘 남녀가 되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시험 합격이나 취업 소식을 알려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세월을 거슬러 초등학교 5학년 담임과 아이들로 돌아가서 호들갑을 떨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면서 알려주어서 그 일의 진상도 알게 되었다. 자고 있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엄마 아빠가 새벽에 학교에 가서 몰래 축하 게시판을 만들었다. 아이가 학급 임원도 아니고, 아빠는 그 당시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어려운 처지에 있었기에 더 가슴 뭉클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 없이 축하 게시판을 만들어준 그들의 진심도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자기 아이와 같고, 바빠서 못하는 것이지 모든 엄마 아빠가 같은 마음이라 믿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메시지의 진심은 통했다. 생각의 치수가 비슷한 사람을 만난 희열까지 만끽하게 해 준 부모님이었다.


스승의 날이 있건 없건 돌아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던 내 삶의 의미는 아이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퇴직을 했지만 매년 오월이면

연두 빛 신록과 함께 일렁이는 감동을 내게 남겨준 학부모와 아이들!

그들 또한 나를 성장시켜주고 삶의 의미를 북돋우어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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