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마 나를 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겠지?’ 내가 살던 생활 근거지가 아니므로 반신반의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장을 나온 아주머니들, 아이들 시선이 나에게 쏠리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저 아시죠?” 한층 더 목소리를 높이며 바짝 다가서는 아이의 얼굴엔 반가움의 생기가 가득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엉거주춤 “ 그래, 나 알아? 여기 아파트에 살아?” 물으면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디서 본 듯하긴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랑 고모 집에 왔던 길이라고 했다.
“ 지난번에 우리 선생님 안 오시는 날 우리 반에 오셨잖아요. “라는 말에 그제 서야 감이 오는 것이었다. 최근에 강사로 일주일간 근처 학교에 출근을 한 적이 있었다. 물고기가 물을 그리워하듯 그냥 며칠간 아이들과 지내고 싶어서 갔던 학교다. 짧은 기간이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잠시 만났던 나를 기억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아이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반가워하는 아이가 활짝 핀 봄꽃처럼 예뻤다. 뭐 작은 것이라도 칭찬의 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별 것 아닌 핫도그 하나를 받아 들고 완전 90도 폴더 인사를 하며 신이 나서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인사를 하는 것만 봐도 인성이 보인다고 했던 면접관 친구 말이 생각났다.
그날 아이는 미세먼지 ‘나쁨’을 몰아내고 내 마음을 ‘맑음’으로 바꾸어줬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먼 하늘에서 퍼져오는 봄 햇살에 시야가 환해지고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던 아이는 나의 마음속 서랍에 저장된 해묵은 사소한 감사들까지 문득 생각나게 했다.
교회에 오실 때마다 나의 손을 꼭 잡아주시던 어떤 할머니 집사님!
어쩌고, 저쩌고…… 말 한마디 없는데도, 이제 고인이 되셨는데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기가 아직도 의미심장하게 전해지고 있다.
스승의 날, 설, 추석 명절마다 감사 문자를 보내오는 어떤 아버지!
저러다 좀 지나면 말겠거니 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얼굴도 한 번 뵌 적 없고 아이를 특별 대우한 것도 전혀 없으니 문자를 받을 때마다 황송하다. 그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현실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없는데, 어려웠던 시절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고마웠다고, 이제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장거리 배달을 시켜 보내왔던 꽃다발!
참 가슴 뭉클했고 늘 지지 않는 아름다운 꽃으로 내 마음속에 피어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근무지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주었던 제자!
혼자서 신문, 우유배달을 하면서 아들을 키우던 그 엄마까지 떠올라서 울컥했다. 남의 아들이지만 대견스러웠고 가슴 벅찬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생전, 값을 깎으려 하지 않는다고 알아서 덤을 듬뿍 얹어주던 재래시장 채소가게 할머니!
내가 넉넉해서가 아니라, 덜 먹고 말지 힘들게 농사지어서 팔러 나온 할머니 채소를 차마 값을 깎을 수가 없었을 뿐인데……. 덤으로 받은 정이 아직도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있다.
카드만 넣어서 마트에 간 날.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 카트를 쓰지 못해서 난감해할 때 선뜻 100원을 넣은 채로 그냥 쓰라고 카트를 넘겨주던 아주머니! 카트 가득 담긴 정을 느끼며 쇼핑 내내 즐거웠다. 쇼핑을 끝내고 차마 100원을 뺄 수 없었다 낯 모르는 사람들끼리 온종일 감사가 이어졌으리라 믿는다
뒷사람이 다칠까 봐 출입문을 그냥 놓아버리지 않고 잡고 기다려주던 사람!
아름다운 뒷모습의 잔상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산책을 하다 보면 지천에 널린 것이 세 잎 클로버이다. 너무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코팅한 네 잎 클로버를 선물 받으면 환호하며 책갈피에라도 간직한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행운에 목말라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지천에 널린 세 잎 클로버처럼 행복은 누구에게나 일상에 널려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었다. 꼭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매일 주고받는 인사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선물한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내 마음에 행복으로 번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