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직을 해서 관사에서 나오느라 2년 만에 이사를 해야 했다. 부동산 경기가 불황 이라 이삿짐센터도 폐업을 많이 했고 영업 중인 센터도 일하는 팀이 많이 줄었단다. 예약을 서둘러야 했다. 3주 전에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하느라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비라도 올까 봐 불안했지만 날씨는 하늘이 하는 일이라 내가 정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날짜와 요일을 정하는 일이었다. 주말을 피해서 월요일로 날을 잡았다.
1,2주 전이 되니 날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삿날 해님이 방긋 웃고 있었다. 맑은 날씨라고 우리도 활짝 웃었다. 며칠 지나 무심코 보니 회색 구름으로 바뀌었다. ‘좀 흐리면 어떠냐 비만 오지 않으면 되지, 흐리면 덥지 않아서 일하기 더 좋아’라며 긍정모드로 중심을 잃지 않았다. 안심하고 있는 중 며칠이 지나 이사 3일 전에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연락을 했다. 이삿날 월요일에 비가 올 확률이 90%란다. 그것도 아침부터 말이다. 허락만 하면 하루 당겨서 일요일도 가능하단다. 그새 변덕을 부린 날씨에 당황했다. 생각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확인해 보니 어느새 회색구름이 하늘색 비로 변해 있었다. 참 난감했다. 사람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리는 ‘비’라는 강력한 복병에 우리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만 생각하면 어차피 해야 할 이사이니 비도 피하고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일요일’이라는 주말이 부담스러웠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 이웃을 생각하면 일주일 중에 가장 피하고 싶은 일요일이었다. 이사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민폐를 더 많이 끼치는 요일 같았다. 본의 아니게 주말의 달콤한 늦잠을 방해하고 온 동네 소란을 피우는 일이니 말이다. 요일과 일기예보를 두고 밀당을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삿짐이야 비를 맞지 않도록 포장을 하겠지만 비를 맞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한테도 미안한 일이었다. 거기다, 가끔 비 오는 날 이사하는 집들을 보면서 느꼈던 안쓰러움까지 부메랑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할 수 없이 먼저 ‘비’를 피하고 싶었다. 염치 불고하고 일요일로 ‘땅땅’ 방망이를 두드렸다. 거두절미하고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했다. 날씨까지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감사인사까지 했다.
비는 피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오르내리는 사다리차 소리에 단잠을 설쳐야 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니 진심으로 미안했다. 입 닫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가버리면 그만이 아니었다. 다시 만날 사람들이 아니라 해도 도리가 아니었다. 뭔가 이 불편한 진심을 쓰고 싶었다. 노트북을 열었다. 짧은 몇 줄이지만 최소한의 일이라도 했다고 자판이 다독여 주었다.
♣ 죄송합니다 ♣
안녕하세요? 000호입니다.
부득불~~
일요일(0일)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주간의 피로를 풀며 늦잠을 자야 하는
일요일 아침 단잠을 방해하며
소란을 피우게 되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염치 불고하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빕니다.
미안합니다.
봄햇살 퍼지듯
각가정에
행복 가득하길 빕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000호 드림
이사 하루 전 토요일 아침 일찍 엘리베이터 문에 붙였다.
행여 못 볼까 봐 타고 내릴 때 볼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문 안쪽에 붙였다.
악플이 달리지 않은 것만으로 이해를 받은 듯 안심이 되었다.
토요일 밤 이사 준비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의 날씨를 보고 경악했다.
예정했던 월요일은 맑음이고 정작 이사를 하는 일요일 오후에 비 예보가 떴다. 이제 와서 이삿짐센터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비구름이 점점 당겨온 셈이었다. 하늘이 하는 일은 하늘에 맡기고 잠을 청했다.
이사하는 날이 왔다.
날짜를 변경시킨 책임감 때문인지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비 오기 전에 일을 마쳐주려고 부랴부랴 왔단다. 아침도 거르고 김밥들을 사서 온 눈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하랴.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대접했다.
역시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숙달된 기사님들이 이웃사정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포장을 하고 사다리를 오르내린다. 그래도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이웃들이 부드러운 얼굴로 인사를 해주었다. 요란한 소음에도 늦잠을 잤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집에서 나오는 어떤 아저씨와 마주쳐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니 전혀 상관없이 잘 잤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어떤 이웃은 열린 문으로 기웃거리며
“어디로 가시나요? 멀리 가시나요? 무슨 일 하시나요?……”등등 호의와 관심을 표현해 주기도 했다. 다른 호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자기도 한 달 뒤에 이사를 한다고 신청을 해서 이삿짐을 싸다 말고 사장님이 달려가서 견적을 내고 계약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이삿짐을 다 실었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 붙였던 사과문을 제거하며서야 한시름 놓았다. 소음을 참아준 이웃들의 배려를 마음에 꾹 눌러 저장했다. 고마웠다. 어디서 만나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이지만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 시동을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도착해서 점심부터 먹자고 제의를 했다.
아저씨들은 손사래를 치며 비 오기 전에 마치고 밥을 먹어야 마음이 편하단다. 포장이사이니 자기들은 일을 해야 한단다. 정리할 동안 주인은 밥을 먹고 오라고 성화였지만 우리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함께 일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짐을 거의 다 들이고 정리하고 나서야 참았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심전심으로 서로 감사하며 밝은 얼굴로 마무리를 했다.
하늘은 비를 내리 든 말든 사람은 할 일을 다했다는 뿌듯함!
서로서로 삶의 지렛대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룬 이사를 마치고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안한 저녁을 맞이했다.
원래 이사하기로 예정했던 월요일!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비 예보 덕분에 하루라도 빨리하길 잘했다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늘은 비를 내리든 말든 사람은 할 일을 다해야 함을 되새김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