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나이 듦

~ 모든 것은 때가 있다 ~

by 강신옥

집이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시간만 절약되는 것이 아니었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만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보통 달콤함이 아니었다.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 것이 늘 즐거움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멀리 길 건너 사거리에 있는 신호등이 보이고 있었다.


어느 해 아침 출근길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 나오고 있을 때, 금방 빨간 신호등이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두르던 종종걸음을 여유 있는 걸음으로 바꾸었다. 이제 막 녹색으로 바뀌었기에 뛰어간들 가는 사이에 다시 빨간색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어차피 기다려서 길을 건너야 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아침부터 조급하게 뛰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쌩~’하고 내 옆을 스치는 날쌘 돌이가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남학생이었다. 녹색 신호등이 켜진 것을 보고 냅다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방을 들고뛰는데 보폭을 최대한 벌려서 성큼성큼 달려가는 모습이 '우사인 볼트'를 연상하게 했다. 사실 녹색 신호등을 먼저 본 나는 뛰어봤자 할 수 없다 판단하고 걸어가는데, 그 남학생은 신호등을 보는 순간 바로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00m 단거리 경주를 하듯 뛰어가는데 순식간이었다. 뒤에서 넋을 놓고 지켜보며 걸었다. 날아간들 과연 건널 수 있을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 말이다. 아침부터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남의 아들이지만 아침부터 땀 흘리고 허탕 치지 않길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사히 건너길 응원하며 뒤에서 지켜보며 걸었다. 초록 신호조차도 꺼지기 미안한지 아슬아슬하게 깜빡깜빡할 때 횡단보도 앞까지 도착했다. 멈추는가 싶었다. 아니었다. 가속도 때문인지 멈추지 않고 더 큰 보폭으로 뛰어 건너고 있었다. 결국 횡단보도 중간에 왔을 때에 신호는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이미 멈출 수 없는 상황. 횡단보도 양쪽에서 모든 운전자들이 어찌 기다려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학생은 기어코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갔다.



다시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괜히 혼자서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 이게 바로 젊다는 것이구나.’ 무릎을 쳤다. 어찌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젊음과 나이 듦의 확연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 신호를 보고서도 오히려 서두르지 않는 나, 괜히 급하게 가다가 넘어질까 뛸 용기조차 내지 못한 나, 시도조차 포기하고서도 익숙해진 것이 편한 나였다.



젊음! 불러보기만 해도 참 가슴 설레는 말이다. 녹색 신호를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도전정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추진력,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용기, 모든 차들을 정지시키는 돌파력. 단 몇 초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는 긍정의 마인드, 이 모든 것이 젊음의 열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나라고 그런 시절이 없었겠는가. 나의 20대 때의 어느 퇴근길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었다. 집이 같은 방향인 동 학년 선생님들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셋이서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뛰기 시작했다. 내 등 뒤에서 선배 선생님이 뛰듯이 걸어오면서 외쳤다.

“ 강 선생, 먼저 가서 버스 잡고 있어.” 정말 나는 줄기차게 뛰었다.

버스 앞문에 올라서면서 말했다.

“ 기사 아저씨, 잠시 만요. 지금 두 사람 오고 있어요.”



결국 기사 아저씨의 배려로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함께 버스를 타고 있었다. 가장 선배이신 선생님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어쩌면 그렇게 나이순으로 뛰어가는지, 20대, 40대, 50대 딱 순서대로 뛰어가더라.”라던 말이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지금 더 가슴을 울리고 있다.



100세 시대! 이제 이 말이 마냥 반갑게 들리지도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도 한다. 나이 듦을 위로 격려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세월을 거슬러 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월의 나이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체력도 열정도 마인드도 다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의 크기도 모양도 달라지는 것이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서도 글에서도 나이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지금 바로 이 글처럼……. 그래서 사람은 뒷모습에서까지 나이가 가늠이 된다.



나이가 드는 것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니 만큼 젊을 때에 부지런히 성장해야 나이 들어서 성숙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의 도전과 열정, 심지어 실패와 좌절까지도 인생의 자양분이 되고 삶의 경험이 되어 나이 듦의 노련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멋이 된다.



이제 녹색 신호등을 보고 쏜살 같이 달려갈 수는 없어도, 가려는 버스를 달려가서 붙잡아 둘 수는 없어도 생각까지 초라해지고 늙을까 두렵다.



이 가을, 나이 들어도 영혼만큼은 녹슬지 않고 빛을 낼 수 있길, 시들지 않고 풍성해지고 깊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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