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백업'하다(1-하늘)

~ 맑고 부드럽고 넓은 가을 하늘처럼~

by 강신옥

가을은 짧다.

계절이 새로 바뀌어서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이 끝나기 전에 가을을 ‘백업’해두고 싶다.

산책을 나섰다. 멀리 단풍놀이를 가지 않아도 공원 전체가 울긋불긋 가을로 물들고 있다.


푸른 하늘도, 빛나는 구름도, 물들어가는 숲길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은행나무도, 그 가운데 가득한 맑은 바람까지 마음에 저장해 두고 싶다. 가을을 마음에 옮겨 담는다.


가장 먼저 담고 싶은 것은 역시 흰 구름 떠가는 가을 하늘이다. 아무리 봐도 아무 모양도 아닌 구름이, 존재 자체만으로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늘에 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바탕이 되어주어서이다.

‘무엇을 내 삶의 바탕으로 살아가느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별 것 아닌 작은 물방울의 모임인 구름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게 만들어주는 하늘이 새삼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바탕이 되는 것은 맑고, 넓고, 부드러운 까닭이다. 나도 구름처럼 하늘을 바탕으로 내 삶을 그려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바탕이 되는 것은 첫째가 맑아서이다.

높다고 다 맑은 것은 아니다. 한때는 높은 자리가 성공인 줄 부러워했다. 남보다 높이 올라가야 든든한 바탕이 되는 줄 알았다.

높은 자리가 자기 삶에 얼마나 바탕이 될까! 높이 올라가도 잠시이다. 언제까지나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내려올 때가 있다. 설령 아무리 높다 한들 맑지 않으면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높은 자리에서 추락할수록, 많은 사람이 우러러봤기에 더 초라하고 비참해 보인다.

가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노라면 마음 바탕이 하늘을 닮아가고 영혼이 순수해지지 않을까?

이 가을, 가을 하늘을 바탕으로 내 삶에 추하고 얼룩진 것들을 되돌아본다.


하늘이 아름다운 바탕이 되는 것은 ‘하늘빛’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쏟아지는 태양빛은 눈이 부시어서 하늘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서늘한 바람으로 온화해진 햇살이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좋은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 많다고 내 삶에 강력한 바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면 결코 자신의 삶에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흔들고 실패하게 하는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과유불급(무엇이든 과하지 않고 적절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도 한다. 누가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을 쳐다보려고 하겠는가. 오히려 뜨거운 햇빛을 피해서 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가을 하늘이 어떤 구름도 다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것은 오랫동안 올려다보기에도 부담 없는 부드러움 때문인가 보다.

이 가을, 가을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노라면 마음 바탕까지 하늘을 닮아 부드러워지고 순해지지 않을까?


하늘이 아름다운 바탕이 되는 것은 넓기 때문이다.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무엇을 그려도 받아주고도 남을 정도로 하늘은 한없이 넓은 바탕이다. 넉넉한 여백의 미가 우리 눈과 마음을 넓고 시원하게 한다. 빽빽하게 가득 채웠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답답하고 복잡할 때가 더 많다.


넓은 하늘을 닮아 마음을 넓혀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것이 아니다. ‘비우는 것’이다. 욕심, 분노, 원망 등 잡된 것을 빨리빨리 털어내서 비우는 것이다. 비우면 넓어진다. 어디 마음뿐이겠는가. 요즘 ‘비우는 삶,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유록' 브런치 작가님이 쓴 글에서 소파니 침대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들을 덜어내고 공간을 넓히는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넓어진 거실에 가족들의 독서 공간이 만들어진 사진까지 보았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는 쾌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침대를 내 다 버리고 넓어진 안방에 온 가족이 함께 마주 보며 떠들다 잠들었다는 이야기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느끼게 했다. 비우면 넓어지는 것이다.


넓은 하늘은 넋을 놓고 올려다봐도 지루하지 않다. 점점 더 깊이 사랑하게 한다.

이 가을, 때로 넋을 놓고 무한한 하늘을 바라보며 넓어지고 깊어지고 싶다.



가을을 백업하며 마음에 담고 싶은 것, 일 순위가 단연 하늘이다. 어떤 위인도 하늘처럼 맑고 부드럽고 넓은 바탕이 될 수는 없다는 것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을 하늘을 쳐다보기에 왠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바탕이 되는 하늘을 마음에 저장하고 싶다. 늘 내마음을 비추며 에너지가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이 달라진다고. 가을은 금방 지나간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하늘을 백업해서 마음에 담아놓아야 황량한 겨울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가을 하늘을 자주, 오랫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며 마음과 영혼의 쉼을 얻고 정화시키고 싶다.

맑고 부드럽고 넓은 가을 하늘을 내 삶의 바탕으로 다지며 산책길에서 돌아왔다.



‖ 커버이미지 출처 : Daum 이미지 ‖ ‖ 이미지 출처 : Rene magrit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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