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단어 '한결같은'

~ 천사처럼 한결같은 친구 ~

by 강신옥

언젠가 모 월간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에 대한 글쓰기 특집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노트에 쭉~ 쓰면서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그중에 ‘한결같은’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여운이 길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라고 말해 주었다. 읽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말이었다. ‘한결같은’이라는 말의 이미지와 닮은 친구도 겹쳐서 떠올랐다. 내 친구 ‘영미’였다.



영미는 우리 고유의 것을 좋아했던 친구이다. 우리말, 우리글을 좋아해서 국어 선생님이 된 친구였다.

지난 1월, 사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포항에서 나를 만나러 서울까지 왔다. 친구가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춘다고 나갔는데 친구가 먼저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편의점 앞으로 갔다. 근처를 이리저리 살펴도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층에도 편의점이 또 있는 것인가 싶어서 올라갔다가 못 찾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 신옥아, 나 개량한복 입고 왔어.”라는 곱고 부드러운 친구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었다

“ 이 엄동설한에 무슨 한복?” 너무 놀랐다.

전화를 끊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 역시 한결같은 친구…….’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다행히 예년에 비해서 그리 추운 겨울은 아니었지만 한겨울인 1월이 아닌가.


그렇다고 친구가 추위를 참으며 멋을 부리려는 사람은 아니다. 화려한 옷과 짙은 화장으로 멋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 내 친구는 그저 우리의 멋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멋을 살리고 싶어 하고, 전하고 싶어 하는 소신을 가진 친구였다.


다시 편의점 앞에 오니 정말 검정치마에 연둣빛 저고리로 개량한복을 입은 친구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무채색 방한용 외투를 입은 군중들 속에 친구가 오롯이 눈에 띄었다. 한겨울에 독야청청한 소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친구가 걱정이 되었다. 소신도 좋지만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몸 생각을 해야지 감기 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나무랐다.

친구는 한결같았다. 겨울 내복에 속바지까지 입어서 방한용 외투보다 훨씬 따뜻한 것이 우리 한복이라고 했다. 우리 한복이 한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며 웃었다.


새벽에 출발해서 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한 친구를 위해 일단 근처의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따뜻한 빵과 커피를 시켰는데, 계산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그냥 지나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추억 속에 빠지고 말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가 계산을 하지 않고 먹고 있었다. 빵을 쌌던 비닐과 컵을 가지고 카운터로 갔다. 고의는 아니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총각이 말했다.

"여고시절, 변치 않는 친구를 만나는 엄마들이 남을 속일 리 있겠느냐" 고 믿어주고 부러워했다.


차를 마시면서 퇴직하고 나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치는 아니지만 몸치였던 친구이다. 정말 춤과는 거리가 먼 친구인데 퇴직하고 고전무용을 배운다고 했다. 우리 선(線)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선을 그려가며 우리 선의 멋을 설명해 주었다. 나이는 들어도 생각이 전혀 퇴색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이 정말 한결같았다


내가 친구를 처음 만난 여고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는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것도 아니다. 방학 때나 되어야 통화를 한 번 씩 할 정도이다. 직접 만난 지는 삼 년이 넘은 것 같다. 그래도 왠지 우리 사이가 멀어졌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만나지 못하기에 그리워하고 있다고 서로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고시절에 만나서 예순이 다 되도록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순전히 ‘한결같은’ 그 친구 덕분이다.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계속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직장 생활하랴……. 늘 바쁘다고 내 사정을 앞세워 연락을 미루곤 했다. 그래도 친구는 서운해하거나 연락을 아주 끊지 않았다. 몇 년 만에 한 번씩 만나도 언제 보아도 늘 ‘한결같은’ 친구였다.


그날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여고시절 그때와 다름없이 한결같았다.



나는 ‘한결같은’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살아올수록 어렵고도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말이다. 특히 ‘한결같은 사람‘, ‘한결같은 인간관계’는 참 귀한 것이다. 나 자신부터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


언젠가부터 쉽게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칭찬과 비난이 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각과 기대치로 사람을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받는 미움과 상처로부터 익숙해지려고 할 뿐 대책이 없을 때가 많았다.


사실 우리는 다 각자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솔직히 얼마나 남에게 선을 행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내가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선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악을 행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차마 대놓고 말로 하지는 않아도 눈을 흘기거나 냉담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는 악을 행치 않으려고 한다. 최소한 그 정도라도 하며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저 이 순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오늘을 살려할 뿐이다. 그러다 때로 영미처럼 생각의 치수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사는 맛이 난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이 삶의 소소한 행복이다.


지금 이 순간도 ‘한결같은’이라는 단어를 자꾸 쓰다 보니 마음이 비워지고 감사하다. 그 단어에는 세상사는 길이 보이고 변함없는 담담한 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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