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 달렸던 천사~
가끔 공원을 산책한다. 산책로를 따라 인도(人道)와 구분된 자전거 길이 있다. 세 발 자전거를 타는 꼬마들, 혼자서도 신나게 달리는 청소년들, 앞뒤로 함께 타고 보조 맞춰 페달을 밟으며 사랑을 싣고 달리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고 걷노라면 어느새 나도 기억 속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태워주던 자전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리가 아파서 한 달 정도 학교에 장기결석을 한 적이 있었다. 회복이 되어 학교에는 다닐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늘 내가 무리한 활동을 할까 봐 염려를 하셨다. 아버지는 학교 교문에서 나를 기다릴 때가 많았다. 하교하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서 가기 위해서였다. 괜찮으니 오시지 말라고 해도 “알았다”라고 대답해놓고는 하교할 때 보면 또 와계시곤 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마냥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도 아버지와 나는 동상이몽이었다. 아버지는 안심이 되어 즐거웠고, 나는 불편하고 창피했다.
고지식하고 강직하셨던 아버지, 조그만 실수에도 불호령으로 야단을 치셨던 아버지와 자전거를 함께 타고 가는 것이 불편했다. 집에서 양복점을 하셨던 아버지는 나와 길이 어긋날까 봐 항상 학교가 끝나기 전에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일손을 멈추고 바쁘게 오시느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옷차림새에 흰머리까지 희끗거리는 아버지가 초라해 보였다.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던 시절은 아니지만, 아버지 연륜만큼 오래되고 낡은 자전거도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멀리서도 나를 발견하는 즉시 목청껏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이 아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나는 친구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때로는 어느새 보셨는지, 교문까지 오는 동안 나를 놀리거나 괴롭힌 짓궂은 남자아이들에게도 불호령 하듯 주의를 주셨다. 아버지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자전거 뒤 안장에 앉힐 때까지 집중되는 친구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느껴졌다. 창피했다.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떨어질라 아버지 허리를 꼭 잡아라.”라고 두어 번 강조하신 후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해서야 나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를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는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찬송가를 불러주시든가 휘파람으로 생음악까지 들려주셨다.
어쩌다 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는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나를 태우러 오지 못하는 것을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 날 하교 길은 자유를 만끽하는 날이었다.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시장에서 눈요기하는 것도, 장사꾼들의 갖가지 호객행위도 온통 즐거움이었다. 눈도 호강을 하고 마음도 풍선이 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시절, 마당에 아버지의 자전거가 안 보이면 아버지가 부재중이라는 표시였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안 보이면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와의 자전거 하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객지에서 직장 생활할 때도 아버지는 자전거로 기차역까지 나를 배웅해 주고 마중도 나오곤 하셨다. 아버지는 짐을 실어주었다. 나는 꼼짝없이 오로지 집으로 직행만 해야 했다. 가는 길에 어디 들리지도 못하고,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여전히 아버지의 자전거는 고마움보다 부담이 더 컸다.
어느덧 내 나이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었다. 이제 마당에서 아버지의 자전거가 없어진 지 오래다. 친정집에 들어서면 마당이 텅 비었다. 아버지의 부재중 표시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허허롭다. 가슴속에 한 줄기 찬바람이 지나가곤 한다. 아버지가 나이 들고 힘이 없어서 자전거를 못 탈 때까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깨달았다. 자식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급한 마음에 자전거로 가장 먼저 분연히 달려오셨던 아버지였다는 것을. 자전거를 태워준 아버지가 늘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자전거에 싣고 열심히 달린 아버지가 계셨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자전거를 세워놓고 교문 곁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늘 내 가슴 한편에 서 계셨던가보다. 지금껏, 주저앉고 싶은 삶의 고비마다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자전거가 이 세상에 부재중이 고서야 알았다. 그 자전거에 실린 아버지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