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만들었다는 천사~
엄마! 온 천지가 봄꽃 잔치예요.
만발한 꽃들과 함께 엄마의 88번째 생신을 축하해요.
지난 휴일에 미리 다녀왔지만 정작 생신날엔 혼자 계시네요. 아이들과 아침밥을 먹는데 울컥하며 밥이 목울대에 걸렸어요. 점심시간, 수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밝고 힘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엄마는 제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셨어요. “괜찮다. 그저 감사하지.”하시니, 뭔가 가슴에 뭉쳤던 덩어리가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어요.
엄마! 생신날마다 용돈이나 실용적인 선물을 드린 것으로 해야 할 숙제를 다 했다 생각했어요. 효도를 한 것으로 자부했어요. 하지만 진짜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어요. 엄마의 사랑을 헤아려 보는 일이었어요. 엄마 나이 88세.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왠지 불안하고 초조해져요. 엄마가 글을 읽을 수 있고 아직 정신이 맑을 때 제 가슴에 새겨진 엄마의 사랑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엄마!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희생으로 점철된 엄마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어요.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기에 별 것 아닌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왜 더 또렷해질까요. 엄마가 되어보니 삶의 모퉁이, 모퉁이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꿈틀거렸어요. 엄마가 겹쳐 보였어요. 엄마의 평범한 일상이 제겐 엄마의 신화였어요.
새벽 5시. 엄마의 새벽기도 소리는 늘 알람시계였고 모닝콜이었어요. 입이 아닌 가슴으로 하는 기도소리. 지금도 가슴 뭉클한 여운으로 감돌고 있어요. 기도는 엄마의 삶에 마중물이었나 봐요. 기도 후 찬송을 흥얼거리면서 쌀을 씻으셨어요.
한겨울 강추위 때일수록 엄마는 더 일찍 일어나셨지요. 불을 지펴 언 겨울을 녹여 주었어요. 늘 새벽밥을 지으셨어요. 즐비한 7남매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일사불란하게 분배하셨지요. 반찬 투정이 스며들 여지도 주지 않았어요. 대문까지 가방을 들어주며 “어서 가라”라고 등을 토닥여주던 손길에 불평도 녹아버렸지요.
덕분에 저는 항상 아침에 교실 문을 여는 아이였어요. 선생님들이 저를 본보기로 내세워 칭찬하시며 지각하는 친구들을 혼낼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랐어요. 세탁기도 없던 시절, 항상 빳빳하게 풀을 먹여서 다림질을 한 옷을 입고 다녔던 저였어요. 초등학교 때 도덕 시간, 저는 ‘용의 단정’에 모델이었지요. 부지런한 엄마가 들을 칭찬을 제가 대신 듣고 자란 셈이지요. 귀로 먹던 보약이었어요.
지금껏 한 번도 엄마가 늦잠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엄마들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때로 늦잠을 자서 허둥거리며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엄마의 곡진한 삶이 아른거렸어요.
어려운 살림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화장품 한 번 바르지 않으시고, 제대로 된 옷 한 번 사 입지 않으셨어요. 신앙으로 가꾸어진 엄마의 속 사람. 그것이 엄마의 표정이 되고 옷이 되었지요.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볼 때면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시장 간 기억이 떠오르곤 해요. 저는 한 곳에서 엄마가 사 오는 물건들을 모아서 지키고, 엄마는 재래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어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엄마는 발품을 팔았지요. 가슴이 아려오네요. 엄마는 가난을 조각조각 겪으면서도 이리저리 잘도 끼워 맞춰 나갔어요. 우리 집 살림은 엄마의 모자이크 완성품이었어요.
엄마, 남들은 할머니라고 부르지만 아직 저에겐 ‘엄마’였어요. 생신을 맞아 엄마를 챙겨준다고 갔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였어요.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진 손을 벌벌 떨면서도 기어코 엄마 손으로 밥을 차렸어요.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하셨어요. 평생, 엄마였어요.
자려고 엄마 곁에 누웠을 때서야 엄마의 실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한숨 불면 날아가 버릴 듯, 만지면 부서져 버릴 듯 마른 몸. 삭정이 같았어요. 인고의 세월만큼 주름 가득한 얼굴. 가슴이 먹먹하고 울분이 차올랐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잠결에도, 잠 못 들고 있는 저를 향해 “야, 어서 자거라.” 한 마디 하시고 다시 가쁜 숨을 몰아 쉬셨어요.
“엄마!” 엄마의 일상이 우리에게 밥이 되고, 에너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된 줄을 미처 몰랐어요. 늘 저를 비춰보는 거울이 된 줄도 몰랐어요. 평생 따라 걷는 저의 인생길이 되어 있었어요.
예순의 나이에도 아직 “엄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도 잊고 살았어요.
편하다고 하시지만 혼자 계시니 늘 죄책감이 가시처럼 걸리면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엄마! 이제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요. 밥 잘 챙겨 드시고 아침저녁 산보하는 것 잊지 마세요.
아무 일 없는 행복을 만들어 주셨던 엄마의 일상. 오늘도 그 행복을 빌며 “엄마! 사랑해요.”
2017년 4월 26일 생신날 셋째 드림.